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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취재후기

국정원이 반성하는 계기 되어야

[취재파일]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취재후기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가 괴한들에게 침입 당했다." 이번 기사를 취재하게 된 최초의 첩보 내용이었습니다.

첩보를 받기 하루 전 인도네시아 국방장관과의 회담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지만, 회담 당일 그런 사건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외교부 출입기자로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남북 군사실무자회담도 결렬된 이후 하루하루 바삐 돌아가던 상황에서 최초 제보를 접수한 뒤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외면하고픈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거듭할수록 관계자들은 함구를 거듭했고, 부인했고, 베일로 가리려고 했습니다. '있었다'고 하면 될 일을 '없었다'도 아니고 '아니다'로 답하는 일부 관계자들의 발언들은 더욱 궁금증을 자극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절도사건을 담당했던 남대문 경찰서는 극도의 보안 유지를 지시한 상태 속에서 서울청과 경찰청 딱 한 라인을 통해서 수사에 대한 지시와 보고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외교통상부 실무라인에서는 아직도 사태를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최초 첩보를 인지한 시점은 국방부와 국정원, 그리고 인도네시아 특사단 사이에서 사건 무마를 위해 물밑 협상을 펴고 있던 단계였습니다.

관계자들의 직접 확인에 1차 실패한 상황에서 사건 발생 장소인 롯데호텔로 취재 포인트를 옮겼습니다. 호텔에서 확인한 특사단의 규모는 대단했습니다. 스위트룸과 디럭스룸을 모두 35개를 빌려쓰고 있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으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장관급 6명이 방문했고, 전체 인원도 50명이 넘었습니다.

방문 목적을 취재해보니, 한국 기업들의 투자 협정 체결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중장기 경제개발 계획 관련 양국 파트너십 논의 등 각종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건, 양국간 방위산업 협력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T-50 고등훈련기 수출 세부 논의였습니다.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수출을 추진했지만, UAE와 폴란드 등에서 수출의 최종 문턱에서 좌절됐던 T-50 수출을 심도깊게 논의한다는 거였습니다. 국방부에 추가 확인한 결과 T-50뿐만이 아니었습니다. LIG 넥스원의 신궁과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방문 시 논의한 한국형 잠수함, 군용 무전기 등의 협력방안도 비공개로 논의한다는 거였습니다.

이제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은 단순 절도가 아니라는데 확신이 생겼습니다. 특사단의 정보를 노린 스파이의 범행일 것이라는 가설을 갖게 됐습니다. 심증을 바탕으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호텔과 외교통상부에 확인결과, 도난 사건이 발생한 곳은 19층 경제조정장관의 보좌관 방이었습니다. 이번 특사단 단장의 최측근 보좌관의 방이 털린 거였습니다. 또한, 스위트룸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대통령 특사단의 경우 별도의 보안요원들이 경호를 한다는 것이 다수의 주장이었고, 그들을 뚫고 침입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반응들이었습니다. '단순 절도범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군사기밀 등 각종 정보가 있는 방이다.' 스파이가 잠입했다는 가설은 점점 사실로 가고 있는 듯한 묘한 흥분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확신 속에 최초 첩보를 받은 뒤 사흘 째 되는 날 기사를 써야겠다고 각오했습니다. 사안의 특성상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외부로 누설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다른 언론사에 정보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취재는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경찰과 외교통상부, 국정원, 국방부 등 확인 가능한 곳은 모두 선택해서 취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조금씩 새로운 팩트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침입자는 3명이고, 여성이 한 명 섞여 있다. 그리고 노트북 2대를 들고 도주했다가 다시 돌려줬다. 동양인으로 보이는데 아직 신원은 확인할 길이 없다. 이들은 객실 잠금장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들어왔다. 그리고 USB를 통해 정보를 빼내가려한 흔적이 있다. 사건 발생 시각과 경찰 신고 접수 시각이 차이가 크다...

이제 사안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경호원의 제지 없이 3명이 잠금장치를 훼손하지도 않고 들어와 노트북의 정보를 빼가려했다? 스파이가 확실해졌습니다. 거듭된 확인에 관련자들도 이건 정보기관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직간접적으로 하나둘씩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누가, 무엇을'이었습니다.

무엇을 빼갔느냐에 대한 정보는 기사나 나간 당일 정확한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인도네시아 특사단 측이 수사를 거부하고 노트북을 가져갔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최후로 남은 취재 포인트는 누가 했느냐였는데 첫날 기사가 나간 이후 제3국의 정보기관과 우리 국정원으로 압축되고 있었습니다. 국방부와 갈등설, 인도네시아 협상 정보 획득설, 한-인니 협력 방해국설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국정원은 계속 부인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긴급 보안 점검회의를 주관했다고 하고, 보안지시가 다시 한 번 내려오고, 외교통상부는 아주 난감해하는 상황이 더욱 의구심을 키웠습니다. 여러 관계자가 국정원이 의심된다는 정보를 제공해줬습니다. 국정원에 대한 의심을 갖고 취재를 계속해나갔지만, 최종 확인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 이 부분은 낙종을 했습니다.

이번 기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분명히 있습니다. 정보기관의 정당한 정보수집활동을 방해했고, 국익을 저해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안방에서 정보 수집을 하다, 그것도 가장 우호적이라는 나라에 대해 첩보활동을 하다 어리숙하게 발각당한 이 사건은 우리 국정원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는 국정원 내부의 권력 암투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최초 취재 기자로서 단언컨대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 내부 암투가 아닙니다. 제 보도가 나가게 된 것은 국정원의 미숙한 작전 수행과 사후 처리 미숙에 따른 국정원의 무능함이었습니다. SBS의 최초 보도 이후에 국정원의 소행으로 알려지게 된 과정에는 제가 받은 최초 제보 외에 분명 또 다른 국정원 내부 제보가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는 국정원 내부 갈등이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통상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호텔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안방에서 수행하다가 발각당했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무능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기사 가운데 한 논설위원의 칼럼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첩보 드라마에 익숙했던 국민들에게 국정원은 '아이리스'나 '아테나'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조직이 아니라 영화 '7급 공무원'같은 조직이었다는 글귀였습니다.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을 국정원이 자성의 기회로 삼고 일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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