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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일까? 아니면 비행기일까?"

'세계 최초 상용화 예정' 위그선 시연회 가다

[취재파일] "배일까? 아니면 비행기일까?"

언뜻 보면 수면에서 질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물에 닿지도 않고 그 위 1~2 미터 허공을 날고 있습니다.

날개에 꼬리도 갖춰, 동글동글 귀여운 장난감 전투기처럼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이 동체는 배일까요 아니면 비행기일까요?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 것은 배로 분류됩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해수면 위 고도 150미터 이하에서 운행하는 건 모두 배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 위 허공을 비행하는 이 배'의 정식명칭은 '위그선'입니다.

속도를 가진 동체와 바다 수면 사이가 1~5미터 정도일 경우, 그 사이엔 일종의 기체압력이 생기는데요.

이를 '위그효과'라고 부릅니다.

이 '위그효과'가 동체의 움직임을 도와 비행기의 3분의 1 수준 연료만으로도 고속을 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속도와 연비, 반대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데다, 보통 배보다 해일의 영향도 덜 받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미 1960년대 구소련에서 군사용으로 고안해냈던 위그선은 한 번도 상용화된 적은 없습니다.

탈것이 상용화되려면 1) 항상적이고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도록 양산될 수 있어야 하고 2) 이를 뒷받침하는 시설과 행정이 갖춰져야 하는데

위그선의 경우, 무엇보다 고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기술 등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 1번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위그선보다 속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선박들이 주로 다니는 바다에서 위그선이 방향/고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선박들 입장에서 위그선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바다의 무법자가 될 수 있습니다.

1번이 충족되지 않다 보니, 2번을 갖추려는 시도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2개 제작사가 위그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고도 조절 기술을 갖춘 최고 시속 220km/h짜리 8인용 위그선이 처음으로 개발됐습니다.

수면 위 5미터보다 위로 올라가면 위그선의 핵심인 '위그효과'는 사라지는데, 필요할 경우 곧바로 위그효과가 사라질 정도의 높이로 올라갔다가 다시 위그효과를 받을 수 있는 고도로 즉시 내려올 수 있는 기술이 갖춰진 겁니다.

1번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됐으니, 2번 준비도 시작됐습니다.

국토해양부는 위그선 관련 안전이나 시설기준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고시를 곧 낼 예정입니다.

법 개정도 필요합니다.

현행 법에서 여객선은 최소 13인승 이상으로 규정돼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현재 개발된 '고도 조절이 자유로운 위그선'은 8인승입니다.

따라서 위그선이 실제 승객 운송수단으로 사용되려면, 위그선을 여객선으로 인정해 주는 새 법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경북도청은 제도적 틀을 마련해 이르면 올 8월부터 포항-울릉도 노선에서 위그선 운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군산시도 한 운항사의 위그선 이용 신청을 받고, 제반시설과 전문 조종사 등이 확보될 경우 군산-제주 노선에서 운항을 허락하겠다는 조건부 허가를 내렸습니다.

경기도청 등 다른 지자체들도 위그선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양한 장점을 갖춘 교통수단입니다.

관광용으로도 인기를 끌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해외에서도 위그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국 군수업체 Patriot3(우리 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대테러 장갑차 제조삽니다)가 벌써 한 척을 구입했습니다.

이번 시연회에 선보인 위그선이 바로 Patriot3가 가져갈 Aron7입니다.

시연회에서 인터뷰에 응한 Patriot사의 사장은 Aron7에 굉장히 큰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 역시 위그선에 대한 어떤 기준도 시설도 마련돼 있지 않지만, 일단 구입한 뒤 미 해군과 상업시장에 홍보하고 제도를 갖추게 한다는 계획입니다.

태국에도 1대가 팔렸습니다.

국제해사기구 IMO도 사실상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던 위그선 관련 기준에 대해 우리 정부의 개정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위그선 분야를 세계 최초로 개척하고 있기 때문에, 몇년안에 우리가 제시하는 기준들로 위그선 관련 국제 기준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간표는 사실상 '최상의 시나리오'입니다.

'짜잔'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줘야 할 위그선 시연회에서도 허술한 모습이 상당 부분 노출됐습니다.

아직 위그선 전문 조종사가 없어 공군 출신 파일럿에 임시로 조종을 맡긴데다 위그선과 제작사 간의 무선연락이 때때로 두절됐고, 결정적으로 시연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Aron7이 날개 부분에 손상을 입은 바람에 짧은 시연 비행은 약 세 시간 동안 겨우 세 번에 그쳤습니다.

정말 감질맛나는 세 번이었습니다-.-

시연회 날은 오전까지 해당 바다에 해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을 정도로 파도가 상당히 거칠었는데,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그 정도 날씨에 위그선이 다녀도 되는 건지 어떤지 아무도 확답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위그선 관련 기준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위그선 선착장이란 건 뭘 어떻게 갖춰야 하는 건지, 다른 선박 및 시설과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도 이제 논의 단계입니다.

말하자면, 재밌는 물건이 하나 등장해 그를 위한 환경을 하나씩 구축해 가는 중입니다.

환경이 빠르게 구축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제대로 구축되는 게 더 중요하겠죠.

특히 안전성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한겨울처럼 껴입고 갔는데도 너무 추워 덜덜 떨며 위그선이 폼나게 한 번 날아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지만, 통통한 비행기처럼 귀엽게 생긴 위그선이 (마침내) 바다 위 허공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찰나의) 모습은 과연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위그선처럼 기존의 분류 범주를 벗어나는 융복합제품들이 많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제품들을 신속하게 포용할 수 있는 행정적 유연성과 느릿한 신중함이 동시에 발휘돼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찍기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가 나와 친구들과 '전화도 되는 카메라 님'이라며 깔깔댔던 게 겨우 몇년전입니다.

난생 처음 본 위그선, 생각보다 빨리 국내 유명 해안가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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