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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외국민 선거, 이대로 안 되죠

[취재파일] 재외국민 선거, 이대로 안 되죠

내년부터 재외국민 선거라는 걸 합니다. 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사람에게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지난 2007년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 선거권을 제한한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재작년 공직선거법에 28개 조항을 새로 만들어 내년부터 제도 시행에 들어갑니다. 제도 시행에 앞서 재외국민 선거를 관리할 재외선관원들이 지난주 마지막 교육을 받았는데, 이 사람들은 4월 1일을 전후로  각자 임지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1. 누가 어떤 투표할 수 있나?

재외국민은 크게 해외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 영주권자, 일시체류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해외국적 취득자, 이른바 시민권자는 재외국민 선거에서 제외됩니다. 국내에 거주지를 갖고 있는 일시 해외거주자는 국내 주소지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그리고 대선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주민등록지가 없는 영주권자는 지역구 국회의원은 뽑지 않고, 국회의원 비례대표와 대통령 선거를 합니다.

2. 재외국민은 몇 명이나 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총 재외국민 숫자를 287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거연령이 넘은 사람을 230만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88만, 일본 48만, 중국 33만 명 순입니다. 선관위는 이 가운데 16%, 즉 37만 명 정도가 실제 투표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15대 대선 때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표 차이가 39만 표였으니까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문제가 뭔가요?

우리나라 재외공관은 모두 161개입니다(일부 대표부 제외). 이 가운데 총 55곳에만 재외선관원이 파견됩니다. 그것도 1곳에 1명씩만 갑니다. 이 사람들이 가서 선거관리계획에서부터 재외선관위 구성, 재외투표소 설치, 재외선거 명부 작성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공정 선거를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사전에 예방하고, 단속을 벌어야 합니다.

일단 한 사람이 관할해야 하는 지역이 어마어마합니다. 일례로 미국 시애틀에 파견되는 선관원은 알래스카도 관할해야 합니다. 영국 전 지역은 혼자 관할합니다. 이집트에 파견되는 선관원은 아프리카 거의 절반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임지를 벗어나 관할구역 전체를 돌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듭니다.

선거인명부 작성할 때도 부정 선거인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해외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는 재외국민 선거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영주권자인지, 시민권자인지는 본인이 자진신고하지 않고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시민권자인데도 영주권자라고 속여 투표에 참여해도 이를 골라내기 어렵다는 겁니다. 나중에 부정 선거 논란이 충분히 나올 만한 대목입니다.

불법 선거 운동 단속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단속은 주재국의 주권 침해 문제와 충돌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 안에서 대놓고 선거사범 단속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누가 불법 선거 운동을 한다고 제보를 줘도 그 현장을 덮쳐서 증거를 확보하거나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할 수 없다는 겁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관 1곳에 1명 나가 있는데 증거 확보나 조사가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중국 같은 곳은 내국민의 정치 활동을 전면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선거활동을 허용할까요? 중국에 파견되는 선관원들은 본인들 표현대로 그야말로 '암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인사회에서 나름 힘 좀 쓸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시민권을 획득해야 그 지역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을 수 있었겠지요. 당연히 선거운동은 이런 사람들이 주가 돼서 움직일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불법입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시민권자인 한인회장 등이 선거 운동을 강행해도 이를 처벌할 근거조차 없습니다.

재외투표소도 열악하기 그지없고, 한국어 구사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은 주민번호라든지, 생년월일 등을 제대로 기재하기 어려울 게 뻔합니다. 투표용지 발송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정당이나 후보자 정보는 어떻게 전달할까? 등등 문제점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4.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법무부는 재외선거사범 대처에 한계가 있는 부분에 대해 입법 보완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거사범을 공관 영사가 조사해도 법적인 효력을 인정한다거나 화상 조사를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투표 방법도 공관투표 외에도 제한적 우편투표 등도 병행해보면 어떨까 하는 궁리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참 부족한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재외선관원으로 파견 가는 공무원들을 실제 만나보니 하나 같이 기대와 우려가 섞인 표정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들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표정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재외국민 선거에 지금까지 들어간 돈도 상당합니다. 앞으로 들어갈 돈은 어마어마하겠지요. 해외 국민의 참정권 부여라는 거창한 목표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돈 값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은 돈대로 쓰고, 온갖 불법이 판치는  유명무실한 선거, 결국은 해외동포 사회의 분열만 초래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제도가 되선 안 될 겁니다.

딱히 해결 방안이 있는 건 아닙니다. 선관위 공무원들도 이 점을 매우 답답해합니다. 근본적으로 전 지구를 대상으로 상대국의 주권을 침해 하지 않은 범위에서 고작 55명에게 제대로 된 선거관리, 단속을 하라고 요구하는 거 자체가 무리입니다. 재외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만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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