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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 "한국인들 통일 의지는..."

한반도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재파일] 미, "한국인들 통일 의지는..."
   


하루 전인 어제 (3월 1일) 미 상원 Dirksen 빌딩 419호실에서는 美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북한의 도발 사이클을 어떻게 중단시킬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부의 대북 라인 핵심 인사들이 출석했죠. 맨 위 사진 속의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와 바로 위 사진 속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2명이 나왔습니다. 1시간 50분 정도 압축적으로 진행된 청문회 동안 두 사람은 참 많은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 중에 우선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플로리다주 출신의 공화당 마르코 루비오 의원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전문가적인 질문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미국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던져보더군요. 참고로 루비오 의원은 1971년생입니다. 한국 나이로 41살이죠. 112대 미 의회 상원에서 두번째로 어린 의원입니다. 일주일 차이로 최연소 의원의 영예는 유타주의 마이크 리 의원에게 넘어갔습니다.

루비오 의원의 질문입니다.

"두 사람은 전문가니까 좀 더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북한의 통일이 동서독 통일보다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서로 다른 경제 체제가 극적으로 통합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북 통일 어떤 상황입니까?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논의되고 있는지, 얼마나 강렬히 원하는 것인지 모두 궁금합니다."

보즈워스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통일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통일이 한국인들의 국가적 과제이자 열망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남북한 사이에 한국이라고 하는 동질감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분단(서로 다른 방향으로 남북이 나아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확고합니다. 다만 통일된다면 북한식 정치경제적 모델은 아닐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식 정치경제모델이 더 실현가능한 모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금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캠벨 차관보의 말입니다.

" 한국 친구들과 만나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는데요, 오랜 시간의 분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람들 쪽에서 보면 같은 피를 갖고 있고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는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간격이 벌어졌다는 현실이 한반도 통일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루비오 의원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보즈워스 대표가 대답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 정부의 중요한 목표가 아닙니다."

한국식 모델로 통일된 통일 한국이 지금처럼 미국과 가까운 사이에 있는 것을 중국이 바라지 않는 것이냐는 루비오 의원의 확인 질문에 보즈워스 대표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한반도 통일에 관한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팀의 시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중국이 한국체제로의 통일을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재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가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중심축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미국 정부 책임자들은 한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자세를 나름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망은 강한데, 통일 비용은 걱정되고, 북한 사람들(정권 핵심인사들)을 미워하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까지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한반도 통일은 북한쪽 주장대로  '우리 민족끼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남북한의 최대동맹국인 미국과 중국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겁니다. 동서독 통일이 미국은 물론 소련의 암묵적 동의 하에 이뤄진 것처럼 말이죠. 그런 면에서 독일 국민들은 당시 레이건-고르바초프라는 두 강국의 정상들에게 고마움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당사자들의 확고한 의지가 최우선이겠지만,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애기입니다.

어제 청문회에서 들은 인상적인 발언 중 하나는 존 케리 외교위원장의 지적이었습니다. 2000년 대선때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 의회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력자입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우선이라는 보즈워스, 캠벨 두 사람을 향해 케리 위원장은 이렇게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꼬집었습니다.

"문명화된 국가들에게 북한을 향해 위험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설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압니다. 벼랑끝 전술에 의지하는 북한에 지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적절한 때 북한과의 양자대화에 나서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얘기하겠습니다. 북미대화야말로 6자회담을 재개시킬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지금 우리가 북한이나 중국에 주도권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북한과 대화하면 그것이 북한의 나쁜 행동을 보상해주는 것이라는 정치적 논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무엇을 협의할지를 결정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안 하면 됩니다.

미국 국무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현 상황을 바꿀 수 없습니다. 더 큰 위험만 가져올 것입니다. 미국의 침묵은 더욱 위험한 상황만 불러올 뿐입니다."

케리 위원장의 집요한 비판과 질책에 보즈워스 대표는 결국 "다자회담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북미대화에 나설 수 있습니다."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미국이 지금 당장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뜻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내부에 결국 북한과의 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협의(때로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현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대화의 문은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등 위험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까지 공개했다. 우리가 세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미얀마에 핵 기술을 이전하고 있다. 그런 핵확산 활동이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북한이 우리하고 대화하고 싶으면 이런 위험한 행동들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북한과의 대화가 생산적일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남북관계를 먼저 개선하고 남북대화를 먼저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런 원칙적인 자세가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서 급속도로 북한과의 대화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북한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북한이 도발하면 쏠까 말까 나한테 묻지 말고 먼저 쏴라"고 독려하는, 거기에 맞서 북한은 특유의 천배, 만배 보복을 외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한국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태평양 건너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두 시간 동안 Korea라는 단어에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면서 느낀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 책임자들이 북한 문제에 관한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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