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던 날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1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계속된 할아버지의 치매. 기저귀를 차신 채로 뒷산 가득 쌓인 낙엽 사이에서 엉금엉금 기다가 발견되고, 대변을 찰흙으로 착각해 빚어서 넣어 놓고, 결국은 가족들이 대소변을 받아 내게 하다 하늘로 가신 그 얼굴이 자꾸 겹쳤습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치매. 85세 이상 노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치매. 2011년 보건복지부 추계로 전국 치매 환자 50만명. 노인 인구 9%가 치매.
누구나 치매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이런 무시무시한 통계를 우리 뉴스에서든 아니면 다른 방송에서든 늘 접해 왔지만, 내가 대상이 될 거라는 생각은 사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성적이고, 뭔가 두뇌를 쓰는 활동을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고, 그러니까 나랑은 상관 없을 것이라고 위로를 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치매 어르신들을 취재하면서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제가 간 곳은 서울 목동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센터. 다른 이름은 '서울형 데이케어센터' 입니다. 치매, 중풍 등으로 장기 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 중에 자신의 힘으로 전혀 거동을 할 수 없는 분들을 제외하고 가족들이 돌보는데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이 주로 이용을 하고 계신 곳입니다.
'계신다'는 말을 써도 될 텐데, 왜 '이용을 한다'라는 말을 썼을까요? 이 곳은 한 번 입소하면 기약없이 생활을 해야하는 복지시설과는 달리 오전에 모셔와서 하루종일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저녁에 다시 모셔다 드리는 출퇴근 치료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복지관과 이용하는 어르신 가족들의 많은 배려 덕에 저는 오전에 모시러 가는 일부터 동행 취재를 해 봤습니다. 스스로 걸어오시는 분들을 제외하고 복지관 승합차로 모시러 가는 분들은 대략 스무명 남짓. 시장통도 갔다가, 아파트도 갔다가, 좁은 골목길도 가는 등 승합차는 부지런히 달려 어르신들을 태웁니다.
이 때,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어르신들이 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복지관에 너무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으로 서 계시다가, 차를 타면 즐거움에 콧노래를 부르시는 분들도 계실 정도입니다.
그렇게 복지관에 도착하면 9시 반.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 간호사 선생님이 혈압 측정을 비롯한 간단한 건강 체크를 합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10시부터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는데 체조에서 시작해 민요교실, 종이접기, 공예까지 다양합니다. 점심시간에는 맛있는 밥을 먹은 후 노래방 기기로 노래도 불렀다가 물리치료를 받았다가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죠.
여기에 오시는 어르신들은 어떤 분이실까요? 전직 교장선생님, 유명 미대 출신 예술가, 유학파까지 경력들이 화려합니다. 심지어 저에게 영어나 일본어로 질문을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위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뇌를 많이 안 써서 치매에 걸리는 거라는 편견을 가진 제가 부끄러워 지는 순간입니다.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시는 소감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는 너무 놀라 마이크를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이라 저의 질문에 동문 서답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 기자생활 하면서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중에 손에 꼽아도 될 정도로 문장이 완벽한 건 물론이고 표현력도 뛰어납니다.
기절 직전에 이른 제가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 선생님께 귓속말로 물었더니, "치매는 대체로 단기 기억력에 문제가 있어요. 방금 밥을 먹고도 밥을 먹은 사실 자체를 잊는다거나 하는 경우죠. 방금 인터뷰하신 분들은 고학력자시고, 살아오신 환경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 질문은 얼마든지 대답 가능하세요" 하며 웃으십니다.
데이케어센터에 대한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요?
먼저, 82살 최 모 할머니.
"눈에 선해. 잠을 자도 여기 오는 꿈을 꾸고 그런다고. 오고 싶어 못배겨."
81살 이 모 할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거나 밖에 할 수가 없잖아. 가족들은 모두 일이 있고. 젊었을 때야 친구도 많고 약속도 많지만, 늙으면 할 일이 없거든. 근데 여기 오면 친구들도 있지, 선생님들도 재미있지, 이거저거 배우지, 너무 좋아."
실제로 이 곳을 다니시는 어른들 중에는 치매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치매가 걸렸다고 해서 그냥 둘 것이 아니라 규칙적이고 꾸준한 치료를 병행하면 호전되거나 진행속도를 늦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용도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치매 환자랑 온종일 붙어 있어야 했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족들도 매우 좋아합니다. 시설에 보내는 것에 대해 죄책감도 들지 않으니 금상첨화입니다.
아. 우리 할아버지가 계실 때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이런 시설은 아직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재정 상황이 다르다보니 턱없이 부족한 곳이 대부분. 그나마 좀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서울과 경기도도 원하는 사람이 모두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시설 이용 기준도 이용에 장벽이 됩니다. 이런 시설은 앞에 적은 것처럼 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 대상인데, (아주 적은 인원수에 한해 등급 외 환자도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정말 아주 적은 인원이에요.) 많은 경우에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들이 판정만 받으려고 하면 '멀쩡'해지는 등 등급 판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데이케어센터마저 걸음마 단계다보니 여행이나 급한 용무 같은 이유로 밤에 잠시 보호를 요청하거나, 단기적으로 어르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은 더더욱 부족합니다.
'전면 무상급식'이 화두가 되면서 복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요즘입니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주는 것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죠. 하지만, 늙지 않고 평생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코 앞에 둔 지금,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노인 복지 정책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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