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대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기숙사 식당 앞을 지나는데, 택시들만 쫘악 서 있다. 취재해보는 게 어때?" 캠퍼스 안에, 그것도 학교 식당 앞에 택시들이 무슨 일로 서 있을까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기숙사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화요일 오전 11시. 오전 11시부터 낮 12시 사이에 택시가 많이 온다고 해서 기숙사 식당 앞에 갔습니다. 그런데 20분이 지나도록 택시가 한 대도 오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정보였을까요? 기숙사 식당의 식권 판매는 11시 30분부터 이뤄진다고 해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11시 25분쯤, 택시 한 대가 기숙사 식당 앞 도로에 차를 세웁니다. 기사 한 명이 차에서 내리더니 식당 건물로 향합니다. 좀 더 기다려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처음에는 하나, 둘씩 모여들던 택시가 어느 순간 도로 양쪽을 전부 차지했습니다. 얼핏 세어봐도 스무 대가 넘습니다.
하지만 손님도, 기사도 없이 전부 '빈 차'입니다. 기사들은 모두 어디로 가셨을까요? 놀랍게도 전부 기숙사 식당 안으로 향합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죠. 식당 안을 들어가보니, 학생보다 택시기사로 보이는 외부인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저렴한 '밥 값'. 서울대학교 안에 있는 구내식당의 메뉴는 한 끼에 가격이 1,700원에서 3,000원 정도 합니다. 아무리 비싼 메뉴도 3,000원을 넘지 않는다는 뜻이죠.
보통 기사들이 많이 찾는 이른바 '기사식당'들도 싸고, 맛 좋기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물가가 오르면서 기사식당에서도 한 끼에 6,000원은 줘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학생식당에서 가장 비싼 메뉴의 가격보다 2배나 높습니다.
택시 기사들이 서울대 기숙사 식당을 많이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기사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됐습니다. 바로 '식단'과 '식재료'. 기사식당을 찾으면 매일 비슷한 메뉴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식당에서 고를 수 있는 메뉴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식단이 매일매일 바뀌는 학교 식당은 다릅니다. 영양도 골고루 고려한 최고의 식단이라고 할 수 있죠. 식재료도 원산지가 투명하게 공개 돼 있습니다. 학생들이 먹는 것이다보니, 학교 식당에서는 원산지에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죠? 따라서 시중 기사식당에서보다 질 좋은 식재료로 구성된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맛'까지 좋다고 하네요.
이런 여러 장점들로 인해 기숙사 식당을 비롯해 서울대 안에 있는 구내식당들은 기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 생협 측은 기숙사 식당 등 일부 구내식당에 외부인 출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여 놓았습니다. 등록금 내는 학생들만 이용하라는 뜻일까요?
취재 결과, 서울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과 학교 구내식당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단지 건물만 제공하는 것이지, 관리비나 유지비 등은 서울대 생협 자체적으로 매점 수익 등을 통해 충당한다고 하네요. 그럼 왜 외부인 출입을 막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의 불편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 학생들이 이용해야할 학생 식당에 외부인들이 오다보면, 점심을 먹거나 수업을 듣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게 학교 측의 입장입니다. 수업시간이 임박해 짧은 시간에 식사를 해결하려고 구내식당을 찾았는데 외부인들이 너무 많아서 식사를 못하게 되는 경우, 학생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죠.
두번째 이유는 '사고 위험' 때문입니다. 택시 수십 대가 학생들이 다니는 캠퍼스 안에 차를 세워두게 되면, 길을 건너는 학생들의 시야를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학생들이 기숙사 식당 앞 도로에서 다치는 사고가 몇번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택시기사들이나 외부인의 출입을 무조건 막는 게 적절한 해법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문을 붙였다고 해서, 실제로 그들의 출입을 강제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강제로 막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보입니다.
차라리 학생들이 붐비는 이용 시간을 피해서, 좀 한산한 시간에 외부인들의 출입과 식사를 적극 권유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입 금지' 안내문 보다는 '더 나은 출입 시간을 권유'하는 안내문이 좀 더 정감있고, 바람직한 대학식당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 기사들이 내는 밥 값이 고스란히 서울대 생협의 수익으로 연결된다니,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 되겠죠.
** 경기 불황 속 '진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취재를 시작한 것인데, 너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비춰진 건 아닌가 싶어 보도 이후에도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1분 30초라는 방송뉴스의 제약을 극복해보고자, 취재파일에 길게 말을 늘어 놓았네요.^^;
보도 이후 '맛'이 실제로 어떠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요, 제가 먹어본 3,000원 짜리 식사는(그날 메뉴는 '안동찜닭'이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취재파일] 기사식당 된 대학식당
서울대 기숙사 식당 취재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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