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이중 횡단보도' 문제야 문제

[취재파일] '이중 횡단보도' 문제야 문제

제 생각에 기자는 꼬투리를 잡는 '놈'입니다. 별로 문제 될 게 없어 보이는 일도 기자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꼬투리가 보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보도한 '이중 횡단보도' 문제도 그랬습니다. 버스중앙차로를 만들다 보니 기존의 일자 횡단보도를 반토막내야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중 횡단보도였습니다.

이른바 이중 횡단보도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버스 중앙차로 때문에 횡단보도가 가운데 보행자들의 대기 장소를 중심으로 어긋나게 배치돼 있습니다. 그림의 경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간다고 보면 먼저 A 구역에 보행신호가 왔을 때 이곳을 건너 대기 구역에서 기다리다가 B 구역에 보행신호가 오면 다시 이곳을 건너게 되는 구조입니다.

A, B구역에 신호가 같이 들어오기도 하고 따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어쨌든 신호등도 있고, 다음 신호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공간도 있기는 한데 왜 사고가 많이 날까요?

아뿔싸! 문제는 이 '이중 횡단보도'가 시민들이 가뜩이나 억누르고 있는 무단횡단 욕구를 촉발시키고 있는 겁니다. 기존의 일자 횡단보도의 경우에는 그나마 반대편 인도까지 가기가 멀어서 포기하게 만들었던 욕구였는데 말이죠. 일단 A 구역을 건너서 중간 지점의 대기 장소까지만 가면 그 다음의 B 구역은 상대적으로 짧고, 금방 건널 수 있을 테니 무단횡단을 하기 쉽고, 중간 지점을 경계로 양쪽의 신호 체계가 다른 곳에서는 반대쪽 녹색 신호등을 자기 신호로 착각하기도 하고...

결국 몇 명의 시민들이 이중 횡단보도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경찰이 알고, 그 주변에서 노점을 하시는 분들도 아는 문제였습니다. "문제야, 문제"라면서도 이 부분이 1촌 공개였는지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문제면 고쳐야지요.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직접 현장에 가봤고, 몇 시간 동안 지켜봤습니다. 며칠도 아니고 단 몇 시간이었는데 참 조마조마하더군요. 무단횡단하시는 분들도 참 안타깝고 이들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운전자들도 딱했습니다. 그렇게 이중 횡단보도가 있는 현장들은 마치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은 없고 살갗에 딱 붙어 있는 물기 머금은 옷을 입고 주인공이 추적추적 걸어가는 그런 배경의 느와르 영화 같았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다행히 제가 보도를 한 이후 교통 시설과 관련해 예산을 쥐고 있는 서울시청이 나섰더군요. 이중 횡단보도 때문에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불행을 막겠다는 이유였습니다.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저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고마울 뿐입니다.

~자(者)라고 하면 '놈'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인(人)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입니다. 선거에 당선된 어느 당선'인'이 원래 통용돼 오던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고 하고요, 노숙자 역시 언론에서는 노숙'인'으로 바꿔 써나가가고 있는 상황이죠.

어떤 기자들은 "기자도 '기인(記人)'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요, 전 그냥 꼬투리 잡는 놈...이게 좋은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꼬투리를 잡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