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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를 여관에 버렸던 어느 20대 부부에게

남매를 여관에 버렸던 어느 20대 부부에게

누구에겐 길다지만, 근무가 많았던 저에게는 짧기만 했던 설연휴 마지막 날. 휴일근무를 하다 제가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제목: 설 연휴 울산서 부부가 자녀 2명 여관에 유기 (☜클릭하세요)

"설 연휴에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부부가  여관에 자녀 2명을 버리고 잠적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어제 오전 6시 20분쯤 울산 중구 성남동 모 여관 객실에서 남매로 보이는 3살 된 남자아이와 8개월 된 여자아이가 버려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아이들은 전날인 지난 4일 밤 10시 40분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함께 투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이들 부부가 고의로 아이들을 버리고 잠적한 것으로 보고 여관 주변의 폐쇄회로 TV 등을 확인하는 등 이들의 행방을 쫓고 있습니다."

'설 연휴에 어떻게 부모가 자식들을 버릴까' 하는  화가 잠시 났지만, 처리해야 하는 기사가 많았고 울산 동부 경찰서에 물어봐도 CCTV는 줄 수 없다는 답변 뿐이어서 그만 잊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제게 이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발신인도 제목도 모두 영어인데다 각 단체의 보도자료 송부 메일 사이에 묻혀 있어서 '또 스팸이구나, 나중에 지우자!' 했는데 제목 끝에 쯤에 쓰인 'Abandoned Babies(버려진 아기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어를 손 놓은 지 오래 돼,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클릭했습니다.

제목: Canadian/ Korean couple wants to adopt the Abandoned babies

Hi my name is 000 and my Wife's name is 000. 
We live in Canada and my wife saw the news broadcast this morning on your SBS morning news about the 2 abandoned children in the motel.
Our hearts go out to these children and god has spoke to our hearts to try and adopt them and give them the love and life they deserve.  Can you please help us to get into contact with the people who are caring for the children now.  You can return our email or call us at 000 as soon as you can.
Thank You and have a good day.

간략한 해석:
안녕하세요. 캐나다에 살고 있는 000과 000입니다.
오늘 아침 SBS 뉴스에서 모텔에 유기된 남매에 관련된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본 이후 몹시 가슴이 아파서 저희 부부가 그 아이들을 입양해 사랑하며 키우고 싶습니다. 빨리 연락주세요.

갑자기 머리가 '둥' 울렸습니다. 영어 해석이 어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버려진 아이들의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하며 입양을 생각했을 그 부부의 착한 마음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도울 수 있는 건 뭐든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 부부에게 '죄송하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유는 다들 아시죠? 부모를 찾았거든요.

경찰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형편 탓에 양육비가 없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다고 진술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관에 버리고 간 후에도 아이들이 잠든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괴로워하셨던 것도요. 잠시 낯선 보호시설에서 엄마 아빠를 그리워했을 아이들도 다시 행복해졌을거라 믿습니다.

엄마의 나이가 저보다 한참 어리긴 해도 20대의 마지막인 제가,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제가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아이들까지 버리려했던 그 마음을 다 이해할 순 없겠죠. 그래도, 제가 주제넘게 한 마디 덧붙인다면, 정말, 부디, 제발 아이들이 그 상처를 잊고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유기 기사는 쓰는 사람도 너무 싫거든요. 흑.

# 덧붙임
제가 지난번 초콜릿 단속 동행한 후기에서 기자들이 인간미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우울해했다는 얘기를 적었는데요, 캐나다에서 온 이메일을 보니 또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오늘은 행복합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한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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