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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눈 내리는 바다에 서다

사진작가 권부문의 '산수와 낙산' 전시



어릴 때 살던 바닷가 마을. 그곳에서 함박눈이 오던 날 바닷가에 서있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새까만 하늘에서 어떻게 하얀 눈이 쏟아지는지 처음으로 궁금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하얀 눈은 해변을 하얀 세상으로 만들었지만 바닷물에 닿을 때는 속절없이 녹아들었다. 박재삼 시인의 글처럼 '바다의 마음으로밖에 못 내리는 눈'이었다.

권부문 작가의 사진을 보다가 그 시절 바닷가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눈 내리는 바다에서 작업한 '낙산' 연작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파도의 하얀 포말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검푸른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사진들이다. 바다 앞에 펼쳐진 하연 눈밭은 마치 수묵산수의 여백이라도 듯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수평선 밖에 못 보던 나에게 세로로 바다를 보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내려도 내려도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떤 시인은 '하늘이 저렇게 사치스러울 수가 없다'며 한탄을 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그 순간의 경험이 멈춰진 작품이 '낙산'이다. 눈은 내리고 있지만 바다에 쌓일 수 없는 숙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이 내리고 작가의 카메라는 우리를 '그' 바다로 인도한다. 하얀 눈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 단지 사진 속에서 멈춰 있을 뿐이다. 시진 속에서 살아 있지만 촬영하는 그 찰나 이후로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풍경을 담는 작업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관람자는 그 풍경 앞에 고독하게 서있을 수 있다.

기록과 재현이라는 사진의 의무는 모든 사람의 몫이 되었다. 누구나 카메라로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진의 의무로부터 벗어났다. 작가의 사진이 그림보다도 더 그림 같은 이유가 그래서일까. 사진은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을 우리도 볼 수 있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 '기록'을 벗어난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이 화려하지 않아 경험을 강요하지는 않는데 그 점이 오히려 작품의 매력이다.

'낙산'을 보고 있는 지금, 눈 오는 바다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자료제공 : 학고재. '권부문 개인전 - 산수와 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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