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시가 건물 블록 또는 사무실에 이름을 붙이거나 번호를 매길 때 알파벳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국수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베이징시는 질량기술감독국과 공안국 주도로 건물 블록의 명칭이나 번호를 매길 때 알파벳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마련해 시민들의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8일 보도했다.
베이징시 공안국이 마련한 초안은 건물의 블록이나 사무실을 표시할 때 규모, 색깔, 스타일 등에 있어 엄격한 기준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초안은 "건물의 블록이나 방을 표시할 때 오직 순차적으로 아라비아 숫자만을 사용할 수 있으며, 숫자를 빼먹거나 외국 문자를 사용해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이 실제로 채택될 경우 `2B' `18A' 처럼 건물의 층이나 블록을 표시하기 위해 알파벳과 숫자를 함께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또 '순차적으로 아라비아 숫자만을 사용'하도록 돼있는 규정에 따라 건물의 층수를 매길 때 '4층'이나 '14층'을 빼놓을 수 없게 된다.
중국이나 홍콩에서 숫자 '4'를 뜻하는 중국어 '사'(四)의 발음이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건물의 층이나 호수를 매길 때 '4' '14' '24' 등을 빼놓는 경우가 많다.
베이징시의 이 같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은 중국 언론 감독 기구인 신문출판총서가 지난해 말 외국어 단어 사용이 중국어의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현지 신문과 출판물, 인터넷 웹사이트상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 단어와 약자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지 한 달만에 나온 것이다.
신문출판총서의 결정에 따라 중국 언론은 외국어 줄임말이나 'AID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처럼 영문 표기의 머리글자로 이뤄진 외국어 두문자어, '중국식 영어'를 뜻하는 신조어 'Chinglish'처럼 중국어와 영어가 혼합된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만일 불가피하게 외국어로 표기해야 할 경우, 반드시 중국어로 그 의미를 설명하도록 했다.
신문출판총서의 외국어 사용 금지 조치에 이어 베이징시가 건물의 블록이나 방을 구분할 때 알파벳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의 네티즌들과 지식인들은 '국수주의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가 지난 1월 베이징의 심장부인 톈안먼(天安門)광장에 9.5m 높이의 거대한 공자(孔子) 동상을 세운데 이어 외국어 사용에 대한 통제에 나선 것은 문화적 국수주의가 발호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외국의 영향력과 다원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반증이라고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지적하고 있다.
광저우(廣州)미술원의 리궁밍(李公明) 교수는 "공식적인 수단을 사용해 문화적 조류를 억압하려는 것은 의미가 없고 효과도 없다"면서 "문화적 개방성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새대 흐름에 반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상하이(上海)에서 활동하는 한 비평가도 "최근 들어 이데올로기 분야를 담당하는 중국 관리들이 점점 문화적 보수주의에 경도되고 있으며, 서구의 문화를 배척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결국 이러한 행위는 중국 문화의 쇠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연합뉴스)
중국 "알파벳 사용말라"…국수주의 논란
베이징시 "건물 블록·방 이름에 알파벳 금지 검토" 지식인.네티즌 "국수주의 발상.보수적 관료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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