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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변했지만"…종부의 설맞이

"시대는 변했지만"…종부의 설맞이

'종부(宗婦)'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당을 모시는 전통 집안에서 1년에 십수 번의 제사와 차례를 모시는 사람. 수 백 명의 손님들을 매번 명절 때마다 대접해야하는 사람.  일단 단어 자체에서 오는 중량감이 있다. 한 문중의 맏이 집안인 종가(宗家)의 맏며느리를 뜻하는 종부는 이름에서조차 무언지 모를 무게가 느껴진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신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선생의 종가를 찾아갔다. 종부들의 설맞이를 위한 취재였다. 의정부시에 위치했는데 지방 종택도 많이 있겠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상 가까운 곳을 찾게 될 수 밖에.

앞서 설 주부터 취재섭외를 김인순 종부님께 부탁드렸다.

"글쎄요... 뭐 설 준비를 미리 해서 뭘 보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세요."

흔쾌히 수락을 해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집안 사람들도 취재응대가 귀찮을텐데 왜 하냐고 한다던데 종부님 생각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유세를 부리냐며 그저 응하는 것이라고...) 집은 3천 평 정도의 넓은 땅에 높다란 벽도 없다. 수락산을 등에 지고 도봉산을 앞마당처럼 종택의 마당엔 4백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개를 7마리 정도 키우신다고 하는데 손님의 성향에 따라 사나워지기도 하고 온순해 지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다행히 취재진에게는 온순했다)

박세당 선생의 12대 종부의 설맞이는 과연 어떨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정말 클래식한 설준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약식으로 대충 하지는 않는 그런 모습 말이다.

김인순 종부께서는 일주일 전부터 설준비에 들어간다고 한다. 손님들이 드실 엿이나 강정, 다식을 만들고 술을 담그고 고사리도 녹이고...우리가 갔을 때는 녹두 부침개와 수수부꾸미를 준비하시고 계셨다.

재료를 준비하신 뒤 요리를 하는 곳은 2백년 된 고택이다. 우리네 옛날집은 기름을 두르고 부침을 해도 통풍이 잘돼 냄새가 집안에 배지 않는다고 하신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생활하는 사랑방으로 여자들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임시 부엌이 된 것이다.

마당 한쪽에서는 떡국 국물이 될 사골 국물을 끓이고 있었는데 물과 불을 준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12대 종손. 부엌에는 들어가선 절대 안 되는 존재였던 종손이 친히 물도 끓이고 불도 피우고 한다. 종부도 힘들고 이제는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당연히 해야되는 일이 아니냐며 얼굴에 웃음을 띄우시는 종손 박용우씨. 예전 조상님이 이 광경을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변한 것은 아니다. 종부는 이미 가을부터 제사에 쓰일 놋제기를 부지런히 손질하고 섣달 그믐에는 사당을 깨끗히 청소한다. 불도 켜놓고 묵은 세배를 저녁에 드리고 정갈하게 새해 맞이를 준비한다.

종부는 30여 년 전 종가에 시집 와 명절에 남들 다가는 친정엔 갈 생각도 못했다. 수돗물도 안나오고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보러 나갈 정도로 시골인 이곳에서 살아왔다. 몰려오는 손님들로 개인생활은 없다시피 했다.

김인순 종부는 종부의 요건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종가도 일반 가정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문중의 종부로서의 긍지가 대화 속에 언듯언듯 배어 있다. 그 일을 모두 자신의 '복'(福)이라고 표현했다. 종부로서의 삶을 복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부는 시대는 변했지만 자신의 조상들도  이 일을 모두 하셨고 본인도 이제는 한 집안의 어른으로서 이어가고 있다며 후대에서도 이런 전통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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