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설 연휴, 3박 4일 연평도 출장일기

설 연휴, 3박 4일 연평도 출장일기

2월 1일(화) 흐림

배는 오전 10시 반 출항이었다. 부두 앞 정육점에서 삼겹살 2근을 샀다. 연평도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고, 설사 있더라도 같은 반찬만 계속 먹으면 질릴 것이라며 뭍에서 고기를 사가라고 출장 경험자들이 말했다. 라면과 스팸, 참치는 어제 밤에 이미 마트에서 구입했다.

파도가 높았다. 배는 놀이공원 바이킹처럼 출렁거렸다. 카메라기자 선배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멀미약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흔들거리는 채로 2시간 동안 섬을 향해 갔다. 연평도 사정은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우리가 잡아놓은 민박집에서 다행히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연평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식당이었다. 방도 깨끗했다. 시동이 잘 안 걸리긴 했지만. 많은 짐을 무리없이 실을 수 있는 승합차를 빌릴 수 있었다. GS마트에서 운영하는 PX도 정상 영업 중이었다. 해병대 면회소 '충민회관'에서도 음식을 팔았다. 라면과 삼겹살을 괜히 사왔구나 싶었다. 민박에 짐을 풀어두고 차를 타고 섬을 한 반퀴 돌았다.

면 사무소에서 연평면장을 만났다. 연평도의 설 풍경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니 역귀성이 더 많아 섬에는 200여 명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원래는 1300명 넘게 살던 곳이었다. 제대로 차례를 지내는 집도 2~3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례를 지내는 집 연락처를 종이에 써서 건네줬다. 설 당일에는 연평성당에서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도 예정돼 있었다. 신부님 연락처를 물어보니 휴대전화도, 집전화도 없은 분이라고 한다. 대신 조금 전 부둣가로 수녀님과 걸어가는 걸 봤다며 가보라고 했다. 차를 몰고 2분 거리의 부두가로 가보니 신부님과 수녀님이 산책을 하고 계셨다. 과연 휴대전화가 필요 없겠구나 싶었다. 신부님을 만나 설 당일 미사 취재를 허락 받았다.

이래 저래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송출 포인트에 가서 장비를 설치하고 테스트를 한 뒤 민박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었다.


2월 2일(수) 흐리고 곳곳에 안개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오늘 취재 계획을 전화로 보고 했다. 8시 뉴스에는 설을 준비하는 연평도민들 모습을 담은 리포트 1개가 계획돼 있었다. 잔뜩 준비해간 컵라면과 통조림으로 아침을 먹고 취재에 나섰다.

언론에 공개된 피격 장소는 우리 민박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포격 당시에도 다른 피격 장소인 군부대 근처 등은 출입이 제한됐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걸어서 피격 장소에 도착하니 끔찍했다. 폐허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참담한 모습 그대로 안보전시관을 조성할 계획이라는데, 아직 주민 동의 절차가 끝나지 않았단다. 주변 빈집 옥상에 올라가 스탠드업을 잡았다. 집에서 기른 개와 함께 포격을 맞은 폐허를 누비며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 형제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전쟁터도 놀이터로 바꾼다.

부두에 나갔다. 역귀성객 20여 명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명 남은 섬에 20명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게다가 더 많은 숫자가 어제 이미 나갔단다. 배 타고 인천 나가시는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방앗간을 하는 탓에 30년 동안 명절에는 꼼짝없이 일만 했는데, 올해는 떡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 인천에 사는 자식들 보러 본인이 올라가신다고 말했다. 부두에는 해병대 장교들도 나왔다. 다들 섬을 떠나지만 임지를 비울 수 없는 군인들은 가족들을 부를 수밖에 없다. 상급자의 부인이 온다는 소식에 젊은 장교들 부인 여럿은 시중을 들기 위해 부두에서 부산을 떨었다.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해병 오빠를 보기 위해 중국에서 온 처녀도 있었다. 부두만은 그래도 설 분위기였다.

하루 종일 취재한 내용을 모아 기사를 썼다. 장비 테스트 결과도 이상없었다. 갑자기 회사에서 오늘 내 기사가 죽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허탈한 마음에 민박집 주인에게 프라이팬을 빌려 준비해간 삼겹살을 구웠다.


2월 3일(목) – 설날 – 자욱한 안개

새벽부터 미리 섭외한 집에 찾아갔다. 면장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한 데 모여 차례를 지내는 집이었다. 육지에서 온 친척도 있었다. 연평도에서 유지라고 불릴만한 집안인 듯 했다. 절을 올리는 장면과 식사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다들 섬 분위기가 쓸쓸하다며 한 마디 씩 했다. 나는 연평도 사람들이 떡국 대신 미역국을 먹는 게 신기했다.

이 집 사람들의 선산에도 함께 찾아갔다. 연평도의 묘들은 모두 소연평도의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운 북쪽 바다 바람을 산으로 등지고, 따뜻한 남쪽 바다를 품에 안은 형세였다. 섬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나 가톨릭교도였지만 별 다른 거부감없이 묘에 절을 올리고 술을 따랐다. 비석만은 가톨릭 식으로 표기돼 있었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취재했다. 미사는 인천에서 주교가 건너와 직접 주재했다. 참석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원채 사람이 없는데다, 일요일이 아니라 그런 듯 싶었다. 성당에서 나오니 섬 전체가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불과 10여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배가 뜰지 걱정됐다. 오늘은 어차피 나가지 못하지만, 내일 나가는 배를 놓치면 꼼짝없이 연휴를 연평도에서 모두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 불안했다.

대강의 구성을 어제 잡아놓았기 때문에 기사 작성은 간단했다. 회사에서는 석해균 선장이 의식을 되찾아 관련 기사량이 늘었다며 길이를 조금 줄이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리 줄여도 1분 30초보다 짧게 만들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쓴 기사 거의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송출 장비에 약간의 이상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기사와 오디오, 촬영한 화면까지 모두 송출한 뒤 홀가분한 기분으로 해병대 면회소에서 밥을 먹었다. 해병들과 함께 내가 나온 리포트를 시청했다. 내일은 안개가 걷히고 배가 뜨기를 기원했다.


2월 4일(금) 안개 걷힘

다행히 안개가 육지로 물러갔다. 출항시각은 오후 3시였다. 오전은 연평도에서 쓴 출장비용 영수증을 정리하고 민박과 렌터카 비용을 정산했다. 설 특집으로 각종 방송사에서 쏟아낸 프로그램들도 즐겁게 시청했다. 카메라기자 선배는 멀미에 또 당하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정말로 배가 떴다. 부두에서 배를 기다리는데. 도착한 배에서 역귀성을 갔던 연평도민들 여럿이 내렸다. 부두에는 섬에서 인사드렸던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온 사람들은 어르신들을 유난히도 반갑게 맞이했다. 취재는 끝났지만 섬의 일상은 이제부터 또 시작이었다. 우리는 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