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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 불가능하다면서 왜 할까?

개헌 논의, 불가능하다면서 왜 할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여당 지도부의 비공개 만찬에서 개헌 발언을 한 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확 달아오르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부터 사방 팔방 돌아다니는 곳마다 개헌을 역설하던 이재오 특임장관 측은 "거봐라. 나 혼자 떠드는 거 아니잖느냐.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다"며 한껏 고무됐습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나 김무성 원내대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측면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장관을 따르는 한나라당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들은 즉각 간담회를 소집하고, 개헌 토론회도 열고, 헌법 공부 열심히 히고, 다음달 8일부터 의원 총회를 소집해 '이 참에 아예 끝장을 보겠다'며 덤벼들고 있습니다.

현 정부 최고 실세의 강력한 '돌격 앞으로'와 여당 지도부의 엄호 사격, 여기에 한나라당 최대 계파 의원들까지 나섰으니, 개헌은 시간 문제인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다른 정치인들의 반응부터 살펴봅니다.

일단 한나라당 내 친박 의원들은 반대합니다. 한나라당 내 다른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민본21'도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도 지금 시점에서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입니다.

여의도 정치판이야 향후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나 산술적으로는 개헌이 어렵다는 게 여의도 중론입니다. 사실 이재오 장관 측에서 역설하고 있는 '대통령이 개헌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대통령의 만찬 발언에 대해 '개헌을 추진해보라'는 취지가 아니라, '21세기에 맞도록 개헌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피력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해석하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청와대도 "대통령이 개헌을 밀어붙이는 듯 비쳐지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이 장관 측과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현 시점에서의 개헌은 한나라당 내 특정 계파의 단독 드라이브라고 보는 게  적절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정작 그 사람들마저도 올해 안에 개헌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보입니다. 다만 언제라도 개헌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입니다.

이렇게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는데도, 이재오 장관 측은  왜 '개헌, 개헌, 개헌'을 외치는 걸까요? 여의도 논객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누가, 누가 우리 편일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내에서는 정체가 모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000 의원이 친이냐, 친박이냐? 친이계라면 그 안에서 누구 사람이냐?"하면서 색깔 구분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이죠.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나 00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도 대부분이고요.

대선, 총선이라는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아군, 적군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그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최고 실세 장관이 깃발을 들었으니, 그 깃발을 받으면 아군이요, 외면하면 적군이겠지요. 자연스럽게 피아 구분이 되는 거고, 우리 계파 세력은 어느 정도이며, 아군들 중에서도 누가 충성도가 높은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명확한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던 의원들은 고민이 상당히 깊어지겠죠? 개헌 논의를 '줄 세우기 협박'이라고 하는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블랙홀 이론

헌법을 바꾼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고도의 정치공학적 행위입니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는 물론 21세기 실정에 맞는 기본권, 환경문제 등  그야말로 거대 담론입니다.

국가의 틀을 새로 짜는 순순한 작업이어야 하지만,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개헌 논의는 모든 작은 담론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 분배의 모든 논의는 결국 개헌 담론의 블랙홀에 흡수되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논의의 중심에 특정 계파가 있다면, 정국은 그 계파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돌아갈 일은 자명하겠죠?

3. 대선 구도 흔들기

한나라당 내 친이계의 최대 고민은 바로 박근혜 전 대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도는 여타 다른 대선주자들과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현재로선 대선 구도면에서는 난공불락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합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이 판을 유지해선 안 됩니다. 무조건 흔들어야 합니다. 친이계 입장에서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해 세력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개헌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지금의 일방적인 독주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계산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개헌의 필요성 공감합니다. 1987년 항쟁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에 맞게 업그레이드할 필요에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260만 마리 가축을 이미 땅 속에 파묻고, 93주 연속 전세값은 치솟고 있는 실정에선 글쎄요...

정치권에선 지금 시점에서 내 식구, 남의 식구 가리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일지는 몰라도, 정작 국민들은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딴나라 사람들로 생각하는 건 아닐지 한번쯤은 걱정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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