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기사를 써봤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뻔한 표현인 줄 알면서도 딱히 적당한 다른 표현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표현들 가운데 바로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근절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아마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최근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이후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자꾸 생각나는 표현이 바로 '근원적 처방', '근본 대책, '근절 방안'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해 9월 이후 소말리아 해적들의 해적질이 더욱 증가하면서 억류된 인질의 숫자가 7백 명이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해적들이 대형 선박을 이용해 외국 해군 함정들이 배치돼 있지않은 먼 바다로 나가 해적질을 하면서 그 피해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해적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방식은 '억류된 인질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와 말레이시아가 구출작전을 성공시켰고, 프랑스와 러시아도 무력 진압 작전을 쓰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인질들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 원칙으로 하고, 협상을 통해 모든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인질들을 안전하게 석방시키는데 주력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인질들의 몸값은 더 높아져만 갔고, 이에 재미를 본 해적들의 선박 납치행위도 덩달아 급증하기만 했습니다. 따라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전략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외신으로 이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먼저 오늘(27일)들어온 외신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미군 중부사령부 해군 사령관인 마크 폭스 중장의 말입니다. 폭스 중장은 "앞으로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바다로 나가기 전, 육지에 있을 때 선제적으로 제압하는 쪽으로 작전 방식을 바꿔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폭스 중장은 또 "소말리아 해적이 이슬람 반군단체와 연계를 맺고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해적들의 돈줄을 추적하고, 물자 보급선을 봉쇄하는데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적들을 배후 조정하는 국제조직을 찾아내 소탕하는게 급선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소말리아의 국회의원인 '모하메드 오마르 달하'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국제 범죄 조직이 소말리아 청년들을 고용해 선박을 납치하고 거액의 몸값을 챙기고 있다"며, "해적질을 근절하려면 이 배후 조정 세력을 찾아내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달하 의원은 특히 "어떻게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소말리아 청년들이 통신장비도 없이, 해외 선박들의 항해 정보를 입수하고 공격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해외에 상주하는 범죄 조직들이 항해 정보를 입수해 선박들에 대한 공격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말리아 청년들이 해적질을 하다 붙잡혀서 재판을 받더라도, 배후의 거물들은 해적질로 벌어들인 돈을 보면서 웃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달하의원의 말을 보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공감을 하기도 했습니다.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
세번째로는 어제 나온 외신입니다. 일부 매체에 보도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자크 랑' 전 프랑스 외무장관이자 유엔의 소말리아 해적담당 특사의 말입니다.
자크 랑 특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해적질을 계획하는 배후 세력을 척결하기위한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고 있다"면서 "해적 퇴치를 위해서는 해적들의 활동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소말리아 부족장 12명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랑 특사는 나아가 "12명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서, 해적들이 해외에서 호텔이나 다른 사업체들을 운영하면서 돈세탁을 하고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랑 특사의 말은 앞서 말한 '달하 의원'의 주장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해적들에 앞서 그 배후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 역시 "해적들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전략을 세워야할 때가 왔다"며 "조만간 새로운 방안들을 발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해적 소탕을 위한 근본 대책과 관련한 외신들을 전해드렸습니다만, 문제는 소말리아의 내부 상황입니다.
소말리아는 지난 1991년 당시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20년 째 극심한 내전에 시달리고 있고, 소말리아인들의 삶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외신을 보면 소말리아인들 대부분 평화와 안정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이며, 소말리아인들의 기대 수명도 50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난 2007년 3월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수도 모가디슈에 입성하면서, 소말리아는 지금의 국가형태를 갖추게 되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이슬람 반군과 교전에다가 복잡한 종족 분쟁까지 얽히면서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 정부의 공권력이 통제력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해적질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공권력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이른바 '근본 대책' '근원적 처방'을 마련하기란 매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잘 훈련된 해안 경비대만 있더라도 해적들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지금의 소말리아 정부는 그럴 능력조차 없는 것입니다. 소말리아 해적들과 부패한 소말리아 정치인, 군, 경찰, 공직자들과의 결탁 역시 눈으로 안 봐도 그려지는 부분일 것입니다.
거기에 목숨을 걸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말리아 젊은이들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말리아 해적 소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언뜻 이런 생각을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까짓것 유엔군 동원하고 미군 동원해서 소말리아 쓸어버리면 간단하겠네!"
영화 '블랙호크 다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만, 실현 불가능한 상상일 것입니다. 해적 '근절 방안'을 마련하려면, 또 해적을 실제로 '근절'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인내심, 그리고 희생을 필요로 해야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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