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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 "얼음까지 녹여 써요"

계속된 한파에 식수원도 얼어붙어

산골 마을, "얼음까지 녹여 써요"

약초의 고장 제천이 동장군의 기세에 한 달 넘게 꽁꽁 얼었습니다. 충북과 강원의 경계 그래서 강원도 사투리가 오히려 더 강할만큼 제천은 충북의 다른 지역보다 늘 더 춥습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도까지 예사롭게 내려가는 요즘은 그야말로 추운지방이란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나더군요.

이 추운 날씨에 마실 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에 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급수차를 몰고 마을 어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내린 눈이 녹지않고 얼어붙어 반들반들 빙판길이 된 도로를 따라 덕산면 월악리로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산과 들, 집마당에는 눈이 수북하고 지붕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드름... 낮시간인데도 주민들은 한 분도 눈에 띄지 않더군요.

어른들은 난방 연료가 아까워 낮시간대에는 마을 경로당에 모여 생활하고 계십니다. 350밀리리터 짜리 생수병과 20리터 짜리 정수기용 물통은 주민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었습니다. 고단한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올해 팔순을 바라보는 한 할아버지는 생수통을 받아들고 홀로 사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개수통엔 물기 흔적이 거의 없고 수도꼭지를 아무리 왼쪽으로 돌려도 물 한방울 나올 기미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열흘 가량 최소한의 물만 쓰며 힘든 겨우살이를 하고 계시더군요.

빨래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무엇보다 화장실 사용이 어려워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거실 옆 수세식 화장실을 쓸 수 없다보니 대문 옆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오가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라고 말하십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이 할아버지에게는 더 큰 걱정거리입니다. 객지에 사는 손자 손녀들이 찾아올 텐데 바깥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게 하기가 너무 미안해서지요. "허 참, 이놈의 날씨... 허허" 인력으로 꺾을 수 없는 동장군의 기세에 할아버지는 그냥 기가 차다는 반응이십니다.또 다른 이웃마을. 50대 아들과 함께 사는 한 할머니는 빨래방망이를 이용해 마당 수도꼭지 앞에 있는 물받이통을 열심히 두드리고 계십니다. 허드렛물이라도 쓸 요량으로 꽝꽝 얼은 얼음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할머니의 방망이질에 10cm 가량 두껍게 언 얼음이 조금씩 깨져 떨어지고 할머니는 맨손으로 덥석덥석 집어 양지바른 쪽에 둔 물통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세수하고 설겆이할 물이라도 쓴다고 하십니다.

간이상수도를 쓰는 이 마을은 계곡물이 꽝꽝 얼어붙어 물 한방울 구경하기 힘듭니다. 온통 두터운 얼음판으로 변해 계곡바닥까지 다 얼어붙었더군요. 웬만하면 얼음 밑으로 졸졸 흐를 법한 물소리도 아예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렇다보니 엄을을 깨고 계곡물을 길어올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추풍령과 맞닿은 충북 영동군 산골마을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의용소방대원들의 비상급수 차량이 2-3일에 한 번씩 2톤 가량의 물을 실어날라 20여 가구의 생활용수를 대주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는 급수차량 도착을 알리는 반장님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칠순, 팔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수레에 물통을 싣고 달려 나왔습니다. 귀한 물 한방울이라도 흘릴까 조심조심 물을 받아 옮깁니다.

문풍지를 발라놓았지만 방안은 여전히 황소바람이 불어들어 한기가 가득... 지난달 25일쯤부터 한낮의 기온도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동장군의 기세는 이렇게 산골마을 풍경을 바꿔놓았고, 때아닌 물전쟁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기상학자들은 100년만에 찾아온 강추위의 원인중 하나로 온난화에 따른 북극의 해빙을 들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승용차 대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가능한한 '두발로족'이 돼 보려합니다. 이 작은 실천이 혹한의 기세를 누그러뜨릴 한 방법이라면 실천에 옮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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