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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쥐 그림과 낙서화가 뱅크시

G20 쥐 그림 대학강사 기소를 보고

G20 쥐 그림과 낙서화가 뱅크시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들. 그의 공식웹사이트(http://www.banksy.co.uk)에서 퍼온, 그의 작품으로 만든 엽서 이미지다. 아래 오른쪽에 그려진 쥐 그림,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며칠 전 영국 현대미술 관련 책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책에 실린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의 작품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뱅크시는 브리스톨 출신의 1974년생 남자라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얼굴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다. 그는 유명 박물관 전시장 벽에 가짜 유물을 전시한다든지 건물 벽에 장난스러운 낙서 그림을 그린다든지 하는 '기행'으로 '게릴라 아티스트' '아트 테러리스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뱅크시는 2003년 런던 대영 박물관 고대유물 전시장 벽에 들소와 쇼핑 카트를 미는 사람이 그려진 시멘트 조각을 붙여놓았다. 이 가짜 '고대유물'은 뱅크시가 박물관에 알려줄 때까지 8일 동안 대영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포위하기 위해 쌓은 벽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예쁜 그림을 그려놓기도 했다.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모범'이 된 사례다.

뱅크시의 그림은 '낙서'의 형식으로 기존의 권위와 가치를 조롱하고,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뱅크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의 '낙서 그림'들은, 브래드 피트가 거액에 사들여 화제가 됐을 정도로 어엿한 작품 대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이 곳곳에 있는 런던은 뱅크시 작품 관람을 위한 지도까지 따로 있다. 2009년에는 그의 고향인 영국 브리스톨 공립 뮤지엄에서 뱅크시 작품 전시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다.

책에는 뱅크시의 작품 사진이 여럿 실려 있었는데, 이 중에서 하나가 내 눈길을 확 끌었다. 뱅크시의 그림들을 예전에 본 기억이 있는데, 이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쥐를 그린 그림이었다. 처음 보는데도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져서 왜 그런가 했더니, 이른바 'G20 쥐 그림--G20 포스터에 대학강사 박 모 씨가 학생들과 함께 그려 넣어 유명해진 그 쥐 말이다--'과 굉장히 흡사했다.

       

나는 처음 포스터에 그려진 쥐를 봤을 때, 그 솜씨가 훌륭해 화가가 그린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뱅크시의 쥐 그림을 보고 나니, G20 쥐 그림은 뱅크시를 참조한 게 확실해 보였다. G20 쥐 그림도 짧은 시간에 작업을 끝내야 하는 그래피티 화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스텐실' 기법으로 그려졌다.

G20 쥐 그림은 뱅크시의 쥐 그림과 흡사할 뿐 아니라 유머러스한 낙서로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림을 그린 박씨는 '온 나라가 G20에 매몰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시 몇몇 언론에서는 이미 이 그림과 뱅크시 그림의 관련성을 보도한 바 있었다. 나 혼자 뒤늦게 깨달았다고 좋아한 셈이다.

나는 당시 쥐 그림을 '수사'한 경찰이 박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이런 걸 갖고 구속영장을?' 하고 의아해하다가, 기각됐다는 소식에 '그러면 그렇지' 했었던 기억이 있다. 몇 달이 흘렀는데, 검찰이 이 대학강사를 기소했다 한다. 기소 사유는 국가 중요행사인 G20 정상회의를 흠집내기 위해 치밀하게 범행을 모의 계획한 뒤 실행했다는 것이다.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담당했다.

벌금 몇 만원이면 끝날 일에 이런 과잉대응이라니. 쓴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어쩌면 검찰이 심오한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검찰은 G20 쥐그림을 뱅크시 작품 못지 않은, 세기의 문제작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이러는 것 아닐까. 검찰이 박씨를 세계적인 낙서화가로 키우려고 이러는 거 아닐까. 정치적 탄압과 논란 속에 유명해진 예술가들이 많지 않은가. 검찰이 자꾸 기삿거리를 만들어 G20 쥐 그림을 잊고 싶어도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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