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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같지 않은 아기돼지의 죽음②

남의 일 같지 않은 아기돼지의 죽음②

나머지 서론은 각설하고, 제가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취재를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안타까웠죠) 이미 마지막 '상차' 작업이 진행중이었습니다. 아기돼지들은 첫 차에 실려 나가버렸고요.

제가 아기돼지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탄생 순간과 어미젖 먹는 모습을 담아놓은 캠코더 화면 뿐이었습니다. 구제역 살처분은 2가지로 나뉩니다. 실제로 발병한 경우와 예방적 살처분이죠. 아기돼지들을 비롯한 김정호 씨의 돼지 70여 마리는 후자에 해당됩니다. 실제로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2백 미터 떨어진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병했고, 예방적 차원에서 매몰처분 된 것입니다.

당연히 농장 주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반발도 하셨겠죠. 멀쩡히 건강히 뛰노는 녀석들을 죽여야한다는 통보에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매몰처분 통보를 받은 다음날 새벽 암퇘지 한 마리는 기어이  아기돼지 5마리에게 세상구경을 시켜줬습니다. 짧으면 하루, 길어도 이틀 정도 밖에 살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거였죠.

차마 실려나가는 내새끼(돼지)들을 지켜볼 수 없다던 농장주 김정호 씨는 작업이 모두 끝난 뒤에 해가 완전히 져버린 저녁무렵 농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멀리까지 찾아왔다면서 힘든 인터뷰에 응해주셨는데요, 왜 농장을 떠나계셨냐는 첫 질문에 감정이 복받치셨는지 바로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자식같은 녀석들에 대한 미안함이 크셨던거죠. 괜한 질문을 드렸나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축산농가의 애환을 적절히 표현할만한 방법도 없기에 눈물 훔치시는 모습은 뉴스 화면에 담았습니다.

드릴 말씀이 또 있습니다. 취재에 응해주신 김정호 씨가 다른 축산농가 분들보다 자신의 돼지에 조금 더 집착하시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들어보시면 고개를 끄덕끄덕 하실겁니다.

10여 년 전쯤 축산업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사료값 걱정을 할 만큼 안 좋은 상황에서 돈은 많이 안 들이고, 건강하고 질 좋은 돼지 품종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 먹으셨답니다. 그래서 멧돼지와 토종돼지, 유럽의 돼지들을 수차례 교차해 교배시켰고, 3년여의 노력 끝에 지금의 돼지 종자를 얻으셨다네요.

김정호 씨 농장의 돼지들은 곡물사료를 먹지 않습니다. 대신 풀과 발효시킨 짚을 먹죠. 또 박스 같은 좁은 틀에 갇힌 상태에서 인공 교배시키는 돼지들과 달리 돼지전용 운동장도 마련돼 있고, 자연적으로 교배하게 놔두신답니다. 돼지답게 살 권리를 지켜주며, 함께 생활하신거죠.

고기를 위해서 키우기는 하지만, 큰 욕심없이 70~80마리 정도의 소규모로 하시고, 그나마도 도살장에 끌려갈 때에는 때리거나 몰고 가는 일 없이 차 문을 열고 스스로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운전하시는 분께 웃돈을 얹어 주고라도 인사를 한다는 말씀. 

다행히 그렇게 키우시는 방식을 전국의 다른 농장에서 배워가겠다는 통에 김정호 씨가 개발한 돼지 종자는 전국 곳곳의 농장에 퍼져 있습니다. 비록 파주 농장의 돼지들은 모두 살처분됐지만, 희망을 버리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시 원상복구될 때까지는 적어도 2~3년은 걸린다고 하는데요, 비록 농림수산식품부를 출입하지는 않지만 여러가지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 아이템이었습니다.

뉴스 화면으로, 또는 신문지상에서 그냥 흘려들었던 소나 돼지의 살처분이 축산농가들에게는 얼마나 뼈 아프고 가슴 시린 일인가를, 또 많은 분들이 축산 발전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계신지를...

사실 예방 차원에서 정부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살처분이지만 김정호 씨의 돼지들은 튼튼해서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사에 포함시킬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를 돼지(덩치 때문에;;)라 부르는 제 입장에선 돼지들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았고, 그래서 소 얘기는 쏙 빼놓고 돼지들의 사연만 전해드립니다.

아 참, 2년 후쯤에는 김정호 씨 농장에 꼭 한번씩들 가보시기 바랍니다. 까만 돼지도 구경하시고, 살은 훨씬 연하고 비계는 쫄깃쫄깃 하다는 그 맛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한번 찾아가려고요.

☞ "남 일 같지 않은 아기돼지의 죽음①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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