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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와의 한달 (3)

연평도와의 한달 (3)

# 빈소에서.

연평도 공사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숨진 고인들의 빈소는 인천 길병원 한 곳에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빈소가 마련된지 하루 이틀이 지나 한동안 전 그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장례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병대 관사 신축공사 현장에서 어이없게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보상받을 길이 막막했던 유족들은 '의사자 지정'을 요구했고, 정부의 결단을 기다리다 장례를 미루기로 한 겁니다.

'의사'란 말 그대로 '의로운 죽음'입니다.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구하려다 희생된 분들을 위해 국가가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해 그에 맞는 예우를 해줍니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 때도 경험했듯이 의사자로 지정되는건 쉽지 않습니다. 침몰한 천안함의 승조원들을 구하기 위해 금양호가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이 배 마저 침몰했던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때 숨진 금양호 선원들도 의사자로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수색 작업 '도중' 숨졌다면 모를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고 김치백, 배복철씨 유족들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정작 장례를 치르지 못한 상황에서 '지정' 문제는 보건복지부에서, '보상'은 행정안전부와, '대화'는 인천시와 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야 고인들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의사자가 아닌 고인들의 장례식에는 깍듯한 경례도, 많은 이들의 추모도 묵념도 없었고 가족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연평도 사태가 좀 안정이 된 이후에 고 김치백씨 유족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취재를 이유로, 무례인줄 알면서도 수시로 빈소를 드나들던 우리를 내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줬던 유족들은 좀 안정이 돼 보였습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에 왔던 갓난아기도 많이 커 있었습니다.

미망인은 장례식을 마치고 남편의 짐을 모두 다 태웠지만 위안이 될까 싶어 신발 하나는 남겨뒀다고 제게 보여주시더군요. 고인은 남자치고는 발이 작은 듯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멍하다'는 말로 표현하셨지만 고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꿈에서 깨게 되는 가족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마디였습니다.

벌써 2달이 다 돼 갑니다. 연평도에 포격이 있었다는 소식에 정신없던 날들이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솔직히 연평도 관련 기사를 한달 넘게 쓰면서 지겨울 때도 많았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을 보고, 같은 일상을 경험하고, 심지어 기사에 쓰는 표현도 비슷했으니까요.

하지만 매 순간 현장에서 '기록하는 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게 저한테 얼마나 중요한 배움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지난 한달이 앞으로의 제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되돌아 봅니다.

김포에 있던 연평도 주민들이 이제 또 어디론가 옮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인들의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을 잊고 일상으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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