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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된 6살 꼬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된 6살 꼬마...
SBS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석지영,미국명 지니 석 교수입니다.

1973년생이니 올해 미국 나이로는 38살이 되겠네요. 지난해 동양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가 됐습니다. 우리로 치면 정교수가 되겠지요. 보통 조교수로 채용된 뒤에 종신교수가 되는데 5-7년이 걸린다는데 석교수는 4년만에 해냈습니다. 전공은 형사법입니다.

석교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는 지난 13일 열린 한국인의 날 기념식이었습니다. 108년전인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도착하며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의 장을 열었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죠. 이 날 석교수는 한미경제연구소가 주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수상했습니다. 서남표 KAIST교수와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등 선배 학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함께 한 것입니다.


[사진 맨 오른쪽이 석교수,그 왼쪽이 박윤식 교수, 그 다음이 서남표 총장입니다. 서있는 사람은 행사를 주최한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아브라함 김 부소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제 행사장에서 단연 주목받은 사람도 석교수였습니다. 그녀의 연설은 다른 두 사람보다 길었는데요, 6살때 이민와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될 때까지의 사연을 담담하게 소개했습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처음 1년동안 정말 고통스러웠다는 기억을 얘기할 때는 괜히 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것 또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겠지만 어린 아이에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환경의 변화가 주는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석교수는 물론 잘 이겨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얘기들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상황이 큰 고통이었지만 거기서 자신은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도 익숙해졌겠지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자신은 말썽을 많이 피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늘 "지니(지영의 영어명)는 더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지니가 예일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마침내 로스쿨의 종신교수가 됐습니다. 대단히 극적인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미국에 건너온 6살짜리 꼬마 아이가 30년의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하버드대 교수가 된 것이 말이죠.


[별 생각없이 갔다가 이런 사람이면 한 번 인터뷰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위 사진은 저와 인터뷰를 위해 걸어가는 석교수의 모습입니다.]

석교수와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데는 어린 시절 본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추억도 작용했습니다. 사심이 있었다는 얘기죠. 킹스필드 교수와 공부벌레 하트(?),그리고 그의 괴짜 친구들, 토론식 수업을 통해 가차없이 학생들을 질타했던 킹스필드 교수,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목숨까지 걸어가며 공부하던 하버드 법대의 학생들...저 정도 연배시면 대부분 기억하실 장면들인데요, 재미있는 것은 석교수는 한국인들이 하버드,그 중에서도 법대에 갖는 일종의 환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하버드 법대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호감은 자신에게 전혀 새로운 사실이며 놀라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가 된 자신에게는 즐거운 일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아마도 석교수도 그 예전 텔레비젼 화면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죽어라 공부했을 겁니다. 다만 그게 억지로 한 게 아니라는 것, 자신이 무엇보다 좋아했고, 하고 싶어했던 일이라는 게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석교수의 얘기입니다.

"제가 무엇을 이뤘다고 한다면 그 것은 아마도 제 어린 시절부터 습관이 된 책읽기에서 시작됐을 거예요. 책읽기는 어린 저에게 큰 기쁨을 줬고 저만의 은밀한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머니에게 감사하답니다.저를 도서관으로 데려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해주셨으니까요."

"사실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된 이후로 가끔씩 어린 한인 친구들로부터 이메일을 받고는 합니다. 나는 문학이나 다른 것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들은 법대나 의대로 가라고 한다는 거예요. (웃음)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세요, 라고 말이죠."

"저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그건 안돼요. 왜냐하면 아침에 눈을 떠서 처음 생각하는 일이 '아,나도 석지영처럼 되고 싶다'가 돼서는 안되거든요.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당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그럴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석교수에게 공부법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교육과 미국 교육에 큰 차이가 있는데다, 그녀의 공부법이 한국 학생들에게 교본이 될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멀고 먼 나라의 얘기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녀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으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물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인 맞습니다. 그렇지만 남다른 환경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미국에는 저같은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온 세계에서 온 친구들로 가득했어요. 그들과 저는 비슷한 점도 많았고 다른 점도 많았죠. 하지만 그게 미국이예요. 물론 저는 저의 근원, 즉 한국 출신이라는 데 강한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자신의 직업과 삶을 잘 연결시킬 수 있는 보다 나은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도 물론이고요."

석교수는 미국인 동료 교수와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에 대해 물었더니 역시 어머니답게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제 아이들은 한국 출신의 어머니를 갖고 있어요. 스스로들도 자신들의 근원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거기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은 외할머니와는 한국말로 소통해요. 한국어 레슨도 받고 있고요. 태권도와 한국 음식같은 한국 문화도 즐깁니다. 맞아요, 그 아이들은 말 그대로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여기서 그녀의 남편인 노아 펠드맨 교수의 하버드 법대 채용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 잡지에 나온 기사인데요 2006년 12월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그 해 가을 당시 하버드 법대 학장이었던 엘리나 케이건 교수(지금은 연방 대법관입니다)가  뉴욕 법조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고 합니다. "하버드 로스쿨은 그 규모와 에너지,활력에 있어서 로스쿨계의 뉴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버드 로스쿨은 인재가 있다면, 특히 뉴욕 탑클래스의 법학자를 스카웃하겠다는 얘기라는 거죠. 

아니나 다를까 12월 7일 하버드 로스쿨은 노아 펠드맨 당시 뉴욕대 로스쿨 교수와 계약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노아 펠드맨은 이슬람법과 미국헌법의 대가로서,그리고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필진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노아 펠드맨은 뉴욕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버드 로스쿨의 발표가 나고서도 한참동안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았는데요, 이 때 언론들이 주목한 사실이 그 해 봄에 하버드 로스쿨 조교수로 채용된 노아 펠드맨의 부인 지니 석이었습니다. 

석교수는 뉴욕대 로스쿨에 자신의 멘토가 있고,자신도 뉴욕을 좋아하지만 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하버드에 많이 있어서 하버드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결정에 남편인 노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고 부부가 서로 각자의 학문적 경력을 선택하는데 간여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는 뒷얘기도 밝혔다고 하네요. 

노아 펠드맨은 "사실 지니가 하버드로 가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저는 정말로 뉴욕을 좋아하고 뉴욕대는 제가 존경하는 동료들로 가득찬 이 활력 넘치는 곳이거든요."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결국 노아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하버드로 옮기고 지금은 함께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이 -아마도 이 기사를 쓴 언론이 뉴욕 언론이어서 하버드에 대해 좀 비판적이기는 한데요- 집요한 것은 당시 지니 석 교수와 남편 노아 펠드맨이 캠브리지에 구입한 집의 가격이 280만달러짜리로 수영장이 있고 9개의 침실이 있는 빅토리아식 주택이라고 보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 이 기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한 대목이 있는데요, 그것은 다름 아닌 석교수의 하버드 로스쿨 시절 성적입니다.그녀는 로스쿨 첫 해부터 A+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샬 스칼라십을 받았고 연방법원의 서기로 일하기도 했었고요. 석교수는 2002년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사실 첫 해부터 하버드 로스쿨 교수들은 그녀를 미래의 로스쿨 교수로 찜해놓았다고 합니다. 석교수도 뉴욕대 로스쿨로부터 제안을 받았지만 그녀의 선택은 하버드였고요. 그런 면에서 석교수 부부는 정말 똑똑하고 인정받는 법학자 부부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이미 꿈을 이룬 것 같은 그녀에게 그래도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 겁니다. 저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미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간절한 영감을 불어넣는 그런 교수, 그게 제가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녀는 아직 젊고 그래서 가능성도 여전히 커보입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상을 받은 게 너무 이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미 많은 성취를 이룬 석교수의 앞길을 지켜보는 것도 보람되고 재미있는 일일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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