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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축사엔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만…

파주 대원리 축산농 98% 살처분 "축산기반 다 무너졌다"

빈 축사엔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만…

"이미 다 묻었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6개월 뒤에 재입식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져 새끼 구하기도 만만치 않을건데…"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대원리. 14개 농가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며 시끌벅적했던 대표적인 축산마을이었지만 이젠 적막감만 감돌았다. 모든 걸 다 얼어붙게 만든 맹추위에 인적마저 끊겨 '휑하니'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이곳은 13개 농가에서 소 2천여마리와 돼지 1천여마리를 땅에 묻었다. 전체 사육두수의 98%가 구제역 재앙에 사라진 것이다. 1개 농가 젖소 80마리가 살아남았지만 언제 살처분될지 풍전등화다.

마을에는 주인 잃은 빈 축사만 덩그러니 남아 매서운 영하의 칼바람만 스쳤고 살처분 가축이 묻힌 매몰지 3~4곳만이 농민들이 겪고 있는 최악의 악몽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곳 농장주 일부는 당장 소득원이 끊기면서 아파트 공사현장에 나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이봉재(45)씨는 "막 살처분 작업이 끝났는데 마을 전체가 공황상태나 다름이 없다"며 "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모두 실의에 빠져 있어 말을 건네기도 어렵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23일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젖소 120여마리를 살처분했다.

인근 파평면 덕천리도 구제역에 휩쓸리며 마을 전체가 생기를 잃었다.

돼지 사육농가가 많은 이곳은 11개 농가 가운데 10개 농가가 구제역으로 돼지 2만마리를 살처분했다.

농장주들은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는 커녕 서로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대부분 집 밖 출입을 삼갔다.

노하영(56)씨는 "돼지 1만마리를 모두 땅속에 묻었는데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며 "차라리 화재라도 났으면 보상금 받아 축사를 짓고 새로 시작을 했겠지만 이건 완전히 속수무책"이라고 허탈해했다.

파주시는 지난해 12월16일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뒤 현재까지 전체 우제류 가축 17만1천672마리 가운데 79.0%인 13만5천634마리를 살처분, 구제역의 피해가 가장 큰 지역 가운데 하나다.

특히 돼지는 13만8천113마리 가운데 89.6%인 12만3천769마리를 살처분해 이미 축산기반이 사실상 붕괴됐다.

파주시 양돈협회 우종진 회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살처분한 농가도, 살아남은 농가도 걱정"이라며 "살처분을 가까스로 면한 농가들도 이동제한에 걸려 기약없이 사료 값, 약 값만 계속 들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비단 구제역으로 축산기반이 붕괴된 곳은 파주시 만이 아니다.

인근 연천군은 전체 소.돼지의 77.0%인 9만8천71마리를, 양주시는 70.9%인 11만7천270마리를 살처분했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았던 김포시 역시 전체 7만9천811마리의 76.7%에 해당하는 6만7천93마리를 살처분하면서 축산업 붕괴의 위기는 살을 에이는 강추위 만큼 이제 현실로 다가섰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경북 안동도 구제역 피해가 심각해 우제류 가축 20만2천여마리 중 70.7%인 14만3천여마리가 살처분됐거나 곧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특히 안동지역은 이번 구제역 사태로 소 9만여마리 중 한우 3만4천512마리, 육우 9마리, 젖소 304마리 등 3만4천907마리(38.7%)가 살처분돼 전통 명품 브랜드인 '안동한우'의 축산 기반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

돼지 역시 총 11만2천여마리 중 10만8천여 마리(96%)가 살처분 후 매몰돼 지역 특산인 '마 먹인 돼지' 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고급 축산물 생산지로서 명성마저 뿌리뽑힐 위기에 처했다.

안동에서 한우를 키우고 있는 송모(53)씨는 "구제역 사태로 자식같은 소를 살처분하는 것도 가슴 아픈데 당분간 축산업을 정상화하기 힘들어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농민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고 눈물을 훔쳤다.

(파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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