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할 때 여러가지 루트(route)가 있습니다. 시민들의 제보를 받을 때가 있고, 주변에서 기업하시는 분들이나 공무원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다보면 '이런 문제가 있겠구나' 취재를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기자 스스로가 제보자가 될 때도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스스로 느낀 문제점에 대해 취재의 반경을 넓히다보면 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닐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주말뉴스에 '주유소 가격표 실종 사건' 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시작은 그랬습니다. 평소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던 저는 요새 천청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에 그래도 좀 저렴한 곳에 넣으려고 여느 때 같으면 잘 안 봤을 주유소 가격표를 유심히 보곤 했던 거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가격표를 찾기 힘든 주유소가 여러군데 눈에 띄더란 것입니다.
주변 동료기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봤더니, '어 나도 그랬는데' 하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이제 본격 취재에 들어갑니다.
몇가지 유형이 있더군요.
우선 가격표를 보이지 않게 가려놓은 곳들입니다. 큼직한 세차안내판에 반쯤 가격표를 가려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가격표 윗칸은 아예 텅 비어있었죠. 이쯤되면 소비자들에게 들어와서 가격 물어보라는 심산이나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직접 들어가 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휘발유가 1리터에 1900원이 넘는 비싼 축에 끼는 주유소입니다. 왜 가격표가 없냐고 묻자 '저기 있는데..'하며 말을 얼버무립니다.
어떤 곳은 최신형 전광판을 큼지막하게 설치해놨는데 아예 전원이 꺼져있습니다. -.-;; 결국 소비자는 가격 정보를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여러 곳에서 본 것은 눈속임입니다. 즉, 주행 방향과 반대 방향에 떡하니 가격표를 세워 놓은 곳입니다. 반대 방향에서는 보일지 모르지만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자들은 전혀 가격표를 볼 수가 없습니다. 들어와서 고개를 확~ 돌려서 확인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아주 큼지막한 주유소 부지인데 뭐그리 땅이 모자란지 가격표를 아주 귀퉁이 구석진 그늘에 몰아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설치했다고 보기가 어려운게 주행하는 사람이건, 반대편에서 있는 사람이건,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유소 주인만, '난 설치했는데..' 하고 자기 위안을 삼을 뿐입니다.
사실 기름값이 뛸 때마다 주유소 가격표가 어디론가 숨어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공식처럼 그렇게 따라다니는 일입니다. 주유소 사장님 입장에선 자신의 주유소가 주변보다 싸다면 광고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되도록 좀 덜 보이게 해서 일단 소비자들이 가격에 놀라 도망가게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만 그건 소위 '공정사회'는 아니겠죠 ^^. 뭐 정권의 화두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법 위반입니다.
'석유류 제품가격표시제'라는 게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주유소들은 입출구에 소비자들이 식별이 가능한 크기로 석유류 제품가격을 표시해야 할 의무가 있고, 지키지 않았을 때는 경고, 반복됐을 땐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규정을 잠시 보면 숫자는 휘발유는 가로 5.5㎝(숫자 1은 제외), 세로 12.0㎝, 굵기 1.5㎝ 이상, 등유는 가로 4.5㎝(숫자 1은 제외), 세로 10.0㎝, 굵기 1.4㎝ 이상입니다.
글자는 그 크기에 대해 별도로 정하고 있는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글자크기는 가격 표시를 인식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순서는 휘발유, 경유, 등유 순서로 해야 하고 할인가격을 정상가격보다 더 위에 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주유소는 카드 할인 가격을 더 위에 올려서 현혹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너무 커서도 안 됩니다. 이 경우는 도로교통법에 저촉됩니다. 입간판을 너무 크게 보행을 방해할 정도로 주유소 땅 밖으로 과도하게 나오게 설치하면 도로교통법에 위반된다고 합니다.)
결국 기본을 지키면 됩니다. 기름값이 고공행진하는 요즘, 물가 안 오르는 것 없이 다 올라서 사람들 걱정이 많은 요즘,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질 부분이 무엇일까 판매자들은 한번더 생각해주면 되겠습니다.
정유사들 항상 하는 말처럼 세금이 절반 이상이라 기름값 내릴 여지가 없다는게 사실이라면 뭐 그리 감추려고 하십니까. 국제유가에 따라 동반 오를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 좀더 절감 노력을 해주고, 그래서 나온 최종 가격이라면 소비자들이 그 주유소의 서비스 정도와 가격 수준을 판단해서 '아, 이 정도면 이 주유소에 가고싶다'라고 결론내려 행동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대로 주는 최소한의 의무를 잊으면 안 될 것이라 봅니다.
(그나저나 취재하면서 돌아다녀 보니까, 기름값 정말 비싸고, 소비자들의 부담도 정말 크다는 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올해 우리 경제, 뛰는 원재재값, 정말 복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유소 가격표 '눈 부릅떠도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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