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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난다면…

나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난다면…

기자생활을 하며, 특히 초년병 시절 경찰기자를 할 때 취재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실  따져 보면  '남의 불행' 입니다.

경찰서와 병원을 돌며, 늘 남들이 일으킨 '사건', 또는 남들에게 우연히 일어나 '사고'를 정신없이 취재하면서도 그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거란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자 생활을 겨우 10년 남짓 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 가운데 하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은 얼마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그러하기에 겸허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 특히 기자로 일하다 보면 항상 까먹는 이 진리를 최근 또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기획기사를 준비하다 최근 공공장소에서 제법 눈에 띄는 설치물인 제세동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름도 어려운 '제세동기'는 사실, 쉽게 말해 갑자기 심장이 마비된 환자를 살리는 심장충격기입니다. (참, 쉬운말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 짜증납니다. 이렇게 이름부터 어렵게 붙여놓고, 홍보나 교육도 없이 시민들에게 써보라고 하는 당국의 오만함이란!) 아무튼 취재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여러가지 알게 됐습니다. 

심장이 마비되는 일은 원래  심장이 나쁜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건강한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심장마비 환자 숫자가 1년에 무려 2만여 명에 달한다는 겁니다.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6천여 명이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심장마비 환자 숫자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일단 심장마비가 일어난 사람 가운데 98%가 죽는다는 겁니다.이유는 바로 심장은 정지된 후 4분 안에 소생술을 해주지 않으면 치명적이기 때문이죠. 병원 안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키지 않는 한, 119를 불러서 병원에 제 아무리 빨리 데려간다 해도 4분 안에 가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심장마비 환자들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암으로 인한 1년  사망자가 7만 명이 안 되는 상황이니, 심장마비 환자 사망률은 엄청난 수치입니다. 그런데, 암이나 교통사고처럼 대책도 어렵고 복잡한 것과 달리 심장마비 환자는 드라마틱하게 살릴 수 있습니다. 심장마비가 일어났을 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간단한 심폐소생술과 심장충격기 사용방법만 알고 있다면 말이죠.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심페소생술과 제세동기 교육이 초등학교부터 철저히 이뤄지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심폐소생술과 심장충격기 사용 방법은 마치 수영과 자전거 타기처럼 일단 어릴 때 배워서 몸에 익히기만 하면 참 쉽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배우면 한두 번 만으론 쉽게 익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당국의 대처는 안일하기만 합니다. 심장충격기를 공공장소에 설치토록 한 법이 통과된 것이 2008년이지만, 설치를 안 해도 제재를 하는 조항을 넣지 않아  지자체마다 설치여부는 천차만별,강남구처럼 재정이 넉넉한 곳은 100개가 넘게 설치 됐지만, 강북구과 금천구는 구 전체에 서너군데 뿐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스마트폰에 응급의료현황을 알 수 있는 앱을 설치한 뒤 매우 흐뭇해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심장충격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아주 친철히 안내돼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그것이 뭐하는 기계인지도 모르고, 그 사용법은 더더욱 모르는 코미디 같은 상황. 생명을 살리는 훌륭한 장비는 설치해 놓고, 국민들에게 방법은 알려주지 않아  '문화지체'를 일으키는 국가.  덕분에 현재로선 내 옆의 사람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복지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2011년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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