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평도 도발 이후 '강(强) 대 강(强)'의 대치로 치달아온 한반도 정세가 기류변화를 맞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금 6자회담 재개에 시동을 걸고 나선 가운데 대북 압박공조를 유지해온 한.미.일 3국 역시 조심스럽게 새로운 대화의 틀을 모색하려는 시그널을 발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압박에 치중됐던 한반도 정세의 무게추가 서서히 대화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오전 외교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6자회담 을 통한 핵폐기'를 언급한 것이 북핵 외교가에 의미있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강경한 대북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다자대화의 틀인 '6자회담'을 끄집어낸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연평도 사건 이후 정부 내에서는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을 의문시하는 시각이 점증했고 심지어 6자회담 자체에 대한 회의론 내지 '무용론'이 거론돼왔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대국문담화에서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힌데서 잘 묻어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국무위원과 만나 "지금은 6자회담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대통령이 '6자회담을 통한 핵폐기'를 언급한 것은 한반도 정세 안전판으로서 '6자회담'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정부 대응기조의 일정한 방향선회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이는 한반도 위기의 진앙인 '북핵'의 근원적 해결없이는 정세안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러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라는 틀을 살려내는 것이 긴요하다는 쪽으로 정부의 상황인식이 정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의 '보이지 않는' 조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달 19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이 한반도 정세안정을 겨냥한 전략적 타협을 모색하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풀이다.
미국의 기류는 이날자 워싱턴 포스트(WP)의 기사를 통해 읽혀지고 있다.
WP는 28일 서울발 온라인 기사를 통해 이 대통령이 과거 신중한 대북 접근 방식에서 최근 강경한 태도로 선회함에 따라 미국 행정부 내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기류는 주변국들의 움직임과 맞물리며 더욱 큰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한국 정부와 함께 대북 압박공조를 펴온 일본 정부가 '북.일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온 점이 주목된다.
중.러가 다시 국면전환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점도 주목할 변수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다시금 6자회담 수석대표간 긴급회의 카드를 꺼내들고 러시아가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중국의 청궈핑(程國平)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와 알렉세이 보로다프킨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28일 성명을 통해 "6자회담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6자회담 수석대표간 긴급회의를 개최하는 것"이라는고 밝혔다.
물론 이 같은 기류의 변화가 실제로 국면전환으로 이어질 지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외교가의 지적도 적지 않다.
한.미.일은 현재 6자회담 전제조건을 성안 중이어서 이를 둘러싸고 관련국들간에 또 다른 대치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고, 경우에 따라 대화국면을 가로막는 '빗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개조건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포함한 모든 핵개발 활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확약 등 3∼4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를 남북대화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6자회담을 통해서 하지만 남북이 또한 협상을 통해 핵 폐기하는 데 대한민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재개조건을 둘러싼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흐름이 서서히 대화국면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특히 5자가 '선(先) 남북관계 개선과 후(後) 6자회담 재개' 기조에 동의하면서 남북대화 재개를 통한 '사전정지' 작업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서울'을 거쳐 '베이징'(6자회담)을 가거나 '워싱턴'(북미대화)으로 가야 한다는데 컨센서스가 형성돼있다는 분석이다.
한.미.일이 지난 7일 워싱턴 3자 외교장관 회동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한목소리를 낸데 이어 중국과 러시아도 28일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간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새해초 남북간 대화재개를 겨냥한 긍정적 흐름이 생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북 억지 의지를 과시하는 한편으로 북한의 확고한 태도변화를 전제로 하는 남북관계 메시지를 줄 가능성이 있고 북한 역시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대화국면에 초점을 둔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핵심적 관건은 결국 북한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한.미.일의 이 같은 변화된 움직임을 전향적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일정한 성의표시에 나설 경우 남북대화를 통한 6자회담 재개 기조가 강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수용의사를 밝힌 IAEA 사찰단의 조기복귀 카드를 고리로 상황이 급진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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