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촌스러운 그림과 빨아 넌 수건이 줄줄이 걸려 있던 곳. 이발소 풍경은 이제 기억속에만 존재합니다. 남자도 미용실에서 멋내는 게 요즘 세태인데요. 이번주 '人스토리'에서는
3대째 전통 이발소를 고집해 온 이발 장인 이남열 씨를 만났습니다.
서울역 뒤편에 자리한 만리동 시장 골목.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오래된 간판에 칠이 벗겨지고 문짝이 어긋난 대문, 그리고 삼색 표시등까지.
70년 대 이발소 풍경 그대로입니다.
[이혜승/아나운서 : 이용원 역사가 깊다고 알고 있는데 얼마나 됐나요?]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좀 오래됐죠. 한 85년 정도 됐어요. 그러니까 외할아버지부터 해서 아버지, 그 다음에 저까지 3대째예요.]
이 씨의 이발 경력은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로 부터 용돈 받는 재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배웠어요. 슬슬 머리 감는 것부터 배우면 아버님께서 용돈을 많이 주시니까. 다른 일 하는 사람보다도 그 재미에 일이 이렇게 된 거예요.]
처음 1년 동안은 가윗날만 갈아야했습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기본 단계가 상당히 힘들어요. 연장을 갈 때 가위를 갖다가 한 1년을 갈아야 이발을 위한 가위질을 가르쳐요. 그러니까 신문 1년치를 잘라야 해요. 왜 자르느냐? 귀 잘라 먹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가위를) 갈 줄 알아야 만이 귀를 안 잘라 먹습니다.]
아버지 밑에서 7년넘게 이발 기술을 배우고 스무 살 되던 해 이발소를 물려받았지만 호기심 많은 젊은 나이에 이발소는 갑갑하기만 했습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일하면서 나간 거예요. 3일은 봐주고 4일은 돌아다니고, 돈 떨어지면 돌아와서 종업원들이 돈 벌어 놓으면 저는 돈 가지고 또 나가고. 그러니까 15년 동안 그 생활을 한 거예요. 산이라는 산, 강이라는 강 안 가본 데가 없어요.]
긴 방황끝에 이 씨는 전통방식의 기술로 승부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전통이발은 무엇이냐 하면 (가위로) 머리깎는 윗머리 자르는 것부터 모든 기법이요. 깎고 나서는 모르는데 5일, 7일, 15일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자라요. (기계로 자른 것과 달리) 멋있게. 그래서 두 달, 석 달, 넉 달 길러도 흉하지 않아요.]
머리를 한 번 자르는 데 사용하는 가위만 5가지.
모두 직접 갈아서 씁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날을 잘 갈아서 가위질하면 기가 막히죠. (이발을) 자연히 잘하게 돼요. 그 가윗날을 기가 막히게 갈 줄 안다는 것 자체는 (이발) 기술 습득이 그만큼 됐다는 것이고, 가위를 못 갈면 (이발) 기술 습득이 안 됐다는 거예요. 날의 척도가 그 사람 기술이에요.]
그의 이런 열정으로 가게는 번창했지만 1990년대 초반 위기에 놓입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퇴폐 영업소가 생기기 시작해서 이발 업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이발사들이 너도나도 손 털고 나가서 오늘날의 이발소가 이렇게 된 원인이에요.]
남성들이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긴데다 간단하고 빨리하는 기법이 통용되면서 전통 이발소는 쇠퇴기를 맞게 된 것.
이 씨 역시 흔들렸지만 전통 방식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따뜻한 양철통에서 비누거품을 만들고손님의 머리를 감길 때도 샤워기 대신 물뿌리개를 사용합니다.
가위는 46년, 선풍기는 30년, 20년이 넘은 연탄난로와 레코드 턴테이블까지.
[지권하/손님 : 정감이 있잖아요. 옛날 것 같은, 옛날 어려서 봤던 그래서 자꾸 오게 되죠.]
옛 모습 그대로 한결같은 정성을 다해온 이발사 이남열 씨.
이제 그의 마지막 바람은 하나 뿐입니다.
[이남열/84년 전통 이발소 운영 : 제2의 전수자를 찾고 있는데요. 그런데 아직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아들이 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많은데 아들이 할 생각이 없나 봐요. 좀 더 기다려 봐야 하겠고. 기다려 보는 것도 좋지만 누가 또 있으면 가르쳐 볼 생각도 있어요. 바라는 것은 그거예요. 제 대에서 끝내기 아쉽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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