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법조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빨리 갔다온 편에 속합니다. 나름대로 군역에 대해서는 소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군역 제도가 흔들리면 나라가 쇠하고 결국 그로 인해 망하게 되더라는 것이죠.
따라서 어릴 때부터 군대는 반드시 다녀오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것도 카투사 말고 한국군 사병으로. 이것이 제가 군대를 일찍 다녀온 공식적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20살에 갑자기 군대를 가기로 결정한 데에는 또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대학을 가고 군에 갈 나이가 되자 제 마음도 심란해졌습니다. 소시적 각오는 각오일 뿐 군대를 가는 것으로 인해 겪게 될 다양한 손실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전공이 문과 계열인지라 방위산업체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덜컥 대학 1학년 말에 결핵을 앓게 됐습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년 가까이 결핵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결핵 치료를 받다보니 초등학교(제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 때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은 결핵으로 인해 군대를 못가서 한이 맺혔다는….'
군역에 대해 제 스스로를 상대로 하는 타협안이 마련됐습니다. 저의 군대 문제를 하늘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결핵 치료를 받고 있을 때 군 입대를 신청해서 신체검사에서 별 문제가 없으니 입대하라고 하면 평소 각오를 지키는 것이고, 만약 결핵으로 인해 입대가 어렵다거나 보충역(저희 때는 방위라고 불렀습니다)으로 빠지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고.
그 때는 두 가지 마음이 50대 50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후자 쪽에 더 큰 기대를 걸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든 그래서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게 됐습니다. 기대와 불안감이 뒤섞인 가슴으로 X레이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1급 장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평가서에는 '결핵'의 '결'자도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저는 제가 결핵이 아닌데 오진으로 결핵약을 먹었던 것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년 후에 입사를 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더니 결핵을 앓은 흔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그후에도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결핵흔을 지적당하고 있습니다. 병무청 신체검사만 제 결핵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당시 1급 결과를 받아들고 병무청 신검장이 있던 서울 후암동의 어둑해진 거리를 걸으면서 느꼈던 그 기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장정으로서 군대에 갈 수 있게 됐다는 자부심 아~주 약간과 함께 3년 가까이 자유와 즐거움을 박탈 당한 채 의무를 져야 한다는 서글픔, 실망감이 교차하는 그 묘한 기분 말입니다.
제가 이 부끄러운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군대에 다녀온다는 것이 각 개인의 신념과 의지에만 믿고 맡기기 어려운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투철한 국가관과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데도 군대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죠. 고무신 거꾸로 신을까봐 걱정되는 애인이 없었는데도요.
따라서 국민이 군대에 스스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군에서 의무복무를 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혜택을 줘야합니다. 20대의 3년(이제는 21개월)이라는 천금 같은 시간을 나라에 기꺼이 바친데 대해서 국가가 응분의 보상을 해야 합니다. 공사나 공무원, 나아가 대학 입학에서 일정한 가산점을 허용하는 방인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좀더 급진적으로는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무를 맡는 조건으로 군대 경력을 요구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합니다.
그러면 군에 가지 않는 여성과 건강상의 이유로 병역 면제를 받은 남성들에 대한 차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한 군대 내 보직을 많이 만들어서 자원 입대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군대도 거대한 조직이다보니 행정 인력의 수요가 매우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리병, 의무병 등의 비전투 요원들도 다수 필요합니다. 이런 보직들을 여성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군 훈련을 받기 어려운 분들께 맡기면 됩니다.
다시 말해 군대에 가는 것이 운이 나쁘거나 소위 빽이 없어서 끌려가는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관문인 것으로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아울러 전쟁에 돌입할 지를 결정하는 고위층 가운데 군대 경험이 없는 분들이 태반이어서 국민들이 그 결정에 수긍하기 힘든 상황도 더 이상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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