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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긴급회의, 각국의 손익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어제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한반도 긴장이 크게 고조되어 역내안정과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니, 남북한 양측은 자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하라는 내용의 발표문을 채택하기 위한 회의였습니다. 회의는 상임이사국 다섯개 나라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제안했습니다.

이 회의가 "결론없이 무산" 됐다거나, "문서채택에 실패"했다는 보도를 어제 저녁부터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무산', '실패','결렬' 같은 단어들이 들어가면, 기사는 수용자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무산, 결렬'로 인해서 어떤 득실을 보았을까요? 또, 북한은? 회의 소집을 요구했던 러시아는 어떤 득실을 보았을까요?


(사진 왼쪽은 한국 유엔대표부 박인국 대사, 오른쪽은 러시아 유엔대표부의 비탈리 추르킨 대사. 이번 안보리 회의의 주인공은 추르킨 대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한국.

한국의 득실을 따지기 전에 비유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죠.

한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를 때려서 코피를 냈습니다. 그래서 반대편 어린이가 주먹을 들었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야야, 왜들그래? 둘 다 참아." 라며 팔을 붙잡았다고 치지요. 그러면 먼저 맞고 코피난 어린이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한국 입장에서 최악은, 러시아가 제안했던 원안대로 언론발표문이 통과되는 것이었습니다.

 "남북한은 자제하라" 외에 다른 앞뒤 맥락이 없는 원안은, 비유하자면 위의 어린이 싸움을 앞뒤 없이 말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제안한 초안은, "남한은 즉각 사격훈련을 취소하라"고 돼 있지 않았습니다. 긴장 완화와 평화유지를 위해 노력하라는,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좋은 말"로 포장돼 있습니다. 외교적 수사의 힘이라면 힘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 문제와 관해 "뜻을 같이 하는 나라(Like-minded countries)"들인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과 입장을 사전조율했습니다.

한반도 긴장이 이렇게 악화되게 된 원인을 적시하고 그 책임을 먼저 묻는다면, 다시말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일으킨 북한을 지목하고 규탄하는 문장이 선행된다면 "양측 자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문장이 들어가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때 안보리 의장성명에 "북한"과 "규탄"이라는 단어를 집어넣느라 한미 양국 외교관들이 한달 넘게 고생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던 전례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러시아가 제안한 초안이 부결되는 것, 즉 '성과없는 회의결렬'도 괜찮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결과가 그렇게 나왔고, 주UN 대표부 분위기는 그래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 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문서초안까지 내놨던 러시아는 어떨까요?

상식적 차원에서 보면 아무런 성과를 못 냈으니 섭섭할만도 하지만, 러시아 대표의 표정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속개된 안보리 정례회의에서 러시아는 연평도 문제를 한 마디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이미 외교적 성과를 충분히 거두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제안한 초안을 미국 등이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 아마도 이번에는 한국정부가 국내정치적 요인까지 겹쳐 훈련을 강행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내다봤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리 외교의 판을 벌인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에는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지만, 점차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왔습니다. 작금의 한반도 문제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담판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로 흐르고 있지요. 러시아는 그걸 막을 수만 있다면, (속된 말로, 한반도 라는 밥상에 자기 숟가락을 얹을 수만 있다면) 남들이 보기에 다소 모순돼 보이는 외교적 제스처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번에 러시아는 안보리 상황을 주도하면서 사실상의 의장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고, "반기문 UN사무총장의 특사를 남북한에 보내자"는, 누구도 선뜻 걷어차기 힘든 제안을 여전히 테이블 위에 남겨놓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니, 되지도 않을 문안 합의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북한은 어떨까요?

(사진은 북한의 유엔대표들. 맨 왼쪽이 박덕훈 차석대사. 반기문 총장 닮았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든 사람이 신선호 대사입니다. 우리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 대표들의 표정은 대체로 떨떠름했지만, 북한 역시 이번에 손해본 게 별로 없습니다.

북한이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는, 우리 군이 북에 대고 포를 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점, 오해하시는 일반인이 꽤 많은 것 같더군요.(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지난번 연평도 포격도발때도 그랬거니와, 북한의 주장은 연평도 주변 해역, 서해 5도 주변 바다가 자기네 바다인데, 왜 남한괴뢰들이 그곳에서 포를 쏘느냐는 겁니다.(우리 군이 훈련할때는 남쪽-남서쪽에 대고 쏩니다.)

여기에는, 해상북방한계선 NLL은 한국전 휴전당시 미국과 남한이 일방적으로 그은 것이고 자기네는 문서로 합의한 바 없으므로, 서해5도 해역은 분쟁수역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한반도 동쪽에선 일본이 독도를 자꾸 분쟁지역화하려고 잡음을 일으키는데, 서해에서는 북한이 서해5도 주변 바다의 해상분계선을 남쪽으로 끌어내리려고 자꾸 시도하는 겁니다.

북한은 안보리 회의에서 이 해역과 관련된 자신들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북한이 이런 주장을 하면 전세계 언론에 북한의 논리가 소개됩니다. 유엔을 취재하는 외국기자중에는 남북한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거나, 북한의 논리에 경도된 사람들도 더러 있기 때문에, 우리 생각보다 북한 입장이 많이 반영된 기사가 각국 언론에 나곤 합니다. (이런 각국 언론 가운데에는 뉴욕타임즈도 포함됩니다.)

문서가 채택이 됐니 안됐니 하는 것보다, 우리가 앞으로 보다 신경을 써야 할 외교적 과제는 북한의 "서해 5도 분쟁지역화"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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