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연평도에 다녀왔습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UN이 그어놓은 NLL 바로 아래 위치한 연평도는 주민 1,7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입니다.
(1,700이란 숫자는 섬에 주둔하는 해병대 군병력은 뺀 숫자로, 공무원 등 기관관계자를 포함한 숫잡니다. 주민등록지가 연평도로 돼 있는 사람이 1,700명 조금 넘고, 실제 섬에 있는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주민은 1,4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차이는 주로 선원 등 부정기적으로 연평도에 머무는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 겁니다.)
섬에 내리자마자 포격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생각해보면 기자가 된 뒤에 '포탄에 맞은 듯 처참하게 부서진 건물'이란 표현은 많이 썼어도 포탄에 맞아 뼈대도 없이 사라진 잔해를 직접 본 건 처음입니다. 정치적인 계산이나 북한 내부사정이야 어찌 됐든, 민가에 이런 무자비한 포탄 세례를 퍼부은 건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란 생각이 들더군요. 낮시간이라 주민들이 대부분 집에 없어 인명피해가 그나마 적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북한군의 기습도발이 있은 지 이틀만인 25일(木)에 섬에 갔는데 이미 대부분 주민들은 뭍으로 피란 간 상황이었고, 남은 사람들 가운데는 소방관이나 경찰, 면사무소 직원 등 공무원이 더 많고, 기자들이 그보다도 더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마을이 텅 비다보니 고요하면서도 긴장되고, 어찌 보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분위기였습니다.
포성 소리가 들린 건 금요일 낮 3시 쯤이었습니다. 카메라 기자와 함께 폐허 현장과 텅 빈 마을을 취재하고 있었는데 북쪽으로부터 예고도 없이 쿵쿵 소리가 들린 겁니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같이 있던 사람들은 누구다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지도 않은 소리였습니다.
서로 '지금 저 소리 들었냐'는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일부 취재진과 주민들은 놀란 마음에 대피소로 뛰어들어갔고, 저도 깜짝 놀라 같이 뛰어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섬 안에 별다른 안내방송이 없었고, 나중에 국방부 발표를 보면 북한군이 자체훈련을 한 것이라고 밝혀졌지만, 어디선가 확인할 수 없는 포성이 들려온다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밤을 두려워하는 건 잘 보이지 않다 보니 미지의 영역이 늘어나기 때문인데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가까워도 잘 보이지 않는 북한군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그게 두려운 겁니다.)
그리고 더 큰 일은 일요일날 일어났죠. 28일은 서해상 군산 앞바다에서 이뤄지는 한미연합훈련 첫 날이었습니다. 북한군이 어떻게 나올지 역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는 아침부터 온 섬에 긴장과 불안감이 흐르고 있는 모습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섬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 즉시 모든 주민과 취재진들은 대피소로 가라".
북한군 포진지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됐기 때문이란 설명만 있었는데요, 며칠 전에 그런 만행을 저질러놓고 미군 핵항모가 서해상에 떠 있는데 또 그런 일을 벌일까 싶으면서도, 남북대화 채널도 다 끊기고, 미국, 일본, 한국에서 모두 대북강경파가 득세한 상황에서 북한군이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일단은 무조건 뛰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대피령이 해제되고 난 뒤였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달려들어온 대피소. 지칠대로 지쳐버린 주민과 웅성거리고 있는 기자들로 대피소는 가득 찼습니다. 제가 몸을 피한 곳이 연평도에 있는 KT 근처 대피소인데, 만약 북한이 의도적인 포격을 다시 가해 올 경우, KT는 섬 안에서 가장 먼저 타격해야 할 목표물 중에 하나기 때문에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대피소 밖으로 나가 다른 대피소를 찾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대피령은 40분만에 해제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북한은 다른 도발을 감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과 북이 아직 정전이나 종전이 아닌 휴전협정만 맺은 상태에서 지도 위에 연평도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거기에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 연평도는 일촉즉발 위기의 땅처럼 돼버렸습니다. 실제 우리 군도 연평도에 전력을 증강했죠. 작전개념도 방어에서 공격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우리의 영토를 어떻게 지키느냐가 기본적으로 중요한 문제겠지만, 그 섬에 살던 주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일 겁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 다시 또 그런 일이 터지면 기약없는 대피소 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과 상처를 치유하기 전까지는 연평도가 과거와 꼭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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