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있는 대형 찜질방 인스파월드.
여느 찜질방이라면 윗옷과 아래옷의 색깔이 같은 찜질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점퍼, 운동복, 작업복 등 평상복을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난 23일 북한군의 포격을 피해 도망치듯 섬을 빠져 나온 연평도 주민들이 길게는 6일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피난' 후 첫 주말을 맞은 주민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막연함과 불안감 속에서 피난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인스파월드 건물은 찜질방, 해수탕, 워터파크,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실내 골프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최대 5천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 주민들은 찜질방과 해수탕이 있는 2~3층에서 주로 지낸다.
1층 카운터에서는 연평도 주민과 이들을 보러 오는 가족에 한해 이용료를 받지 않고 있다. 매일 수십명의 취재진이 오가기 때문에 별다른 제한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 '찜질방'이라고 표시된 문을 열면 약 1천650㎡ 규모의 대형 홀이 나온다.
이곳은 노인과 성인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찜질방용 매트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잠이 부족한지 눈을 붙이고 있다.
접은 점퍼를 베개 삼아 누워 있던 김복임(65.여)씨는 "찜질방 근처에 딸이 살고 있어 바지와 티셔츠를 빌려 입었다. 딸이 자꾸 집으로 오라고 하는데 폐를 끼칠까봐 선뜻 찾아가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평도 포격으로 섬에 들어온 외지인 2명이 숨지긴 했지만 주민들은 모두 살아 남아 반갑고 함께 있으니 심심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아내, 아들, 손자 2명을 데리고 지난 25일 연평도를 떠나왔다는 박동만(73)씨는 3살 짜리 손자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엉덩이를 휴지로 닦아 주고 있었다.
박씨는 "나 스스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데 어린 아이까지 돌보려니 힘들다"라며 "언제까지 이런 곳에서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홀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연평도 포격 관련 방송이 나오자 주민들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TV를 보고 있던 박재복(42)씨는 "우리가 인간방패도 아니고 언제 또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섬으로 어떻게 돌아가겠냐"라며 "정부에서 빨리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평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찜질방 한켠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놀이방에서 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인천시교육청은 연평도 학생들이 인천과 전국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분산 배정했지만 학생들 상당수는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 교사,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캐릭터가 그려진 반팔 티셔츠와 찜질복 반바지를 입은 방지은(13.연평중 1년)양은 "교복과 실내화 차림으로 섬을 빠져 나온 지 이틀 만에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로 돌아가 여름옷을 챙겨왔다"라며 "학교에 가지 않으니 하루종일 할 일이 없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낮 12시가 다가오자 임시 식당으로 마련된 2층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사람들은 둥근 접시를 들고 인천시청과 옹진군청,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봉사원들이 나눠주는 밥과 국, 반찬을 받았다. 이날 점심 반찬으로는 불고기, 고추조림, 김치가 나왔다.
안세연(13.연평중 1년)양은 "줄이 길기 때문에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라며 "식사는 나쁘지 않은데 고등학생 오빠들은 양이 적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피난 첫 주말을 맞아 이날 오전 찜질방에서는 주민 90여명이 모인 가운데 천주교 인천교구 연평도성당 김태헌 신부가 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김 신부는 기도말을 통해 "주님 은총으로 연평도 주민들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몸과 마음이 아픈 주민들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밤이 되면 주민들은 최적의 잠자리를 찾아 찜질방을 배회한다. 잠을 청하려고 해도 워낙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 시끄럽기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시 옹진군보건소와 가천의대 길병원이 찜질방 2층에 마련한 응급 진료소에는 매일 수십명의 피난민이 찾아와 감기, 두통 등 '피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찜질방 1층에는 각 기관.단체에서 전달한 구호품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주민비상대책위 관계자는 "700명분의 속옷, 400명분의 양말 등 구호품이 쌓여 있는데 여기 있는 인원이 많을 때는 1천200명 이상 되기 때문에 공평성 문제로 나눠주지 못하고 있다"라며 "1천명분 이상의 구호품이 모이면 적절하게 배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피난 첫 주말' 연평주민 임시숙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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