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마리아여, 패스를 도우소서!"
미식축구에 '헤일 메리 패스(Hail Mary Pass)'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쿼터백이 아주 적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히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하는 말입니다. 농구의 버저 비터(buzzer beater)와 비슷한 것으로, 전.후반 종료 직전 승부를 뒤집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종종 쓰입니다.
이 표현은 1975년 NFL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유래됐습니다. 댈라스 카우보이스는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10:14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댈라스의 쿼터백 로저 스토백은 경기 종료 24초를 남겨놓고 필드 중앙에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마지막 롱 패스를 던졌는데, 이것이 터치다운으로 연결되며 경기가 16:10으로 역전됩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이 쿼터백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패스에 대해 "눈 질끈 감고, '성모마리아여!'를 외치며 던졌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성모 마리아 패스(Hail Mary pass)'는 '낮은 가능성을 보고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승부수'라는 뜻으로, 미식축구 이외의 분야에서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패스"는 요즘 뉴욕 언론의 경제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연방준비제도, Federal Reserve)이 시행에 들어간 6천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은 원래 QE 2 라고 불립니다. QE는 Quantitative Easing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양적 완화'라고 번역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1조7천억 달러 가량의 돈을 풀었던 것이 QE1에 해당하고, 이번에 6천억 달러를 푸는 것이 QE2입니다. 이 QE2를 뉴욕언론들은 요즘 '버냉키의 성모 마리아 패스'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연준은 어떻게 돈을 푸는 것일까요? 뉴욕연방은행을 통해 시장에서 새로 발행, 경매되는 미국 국채(treasury bond)를 사들이는 것입니다. 채권 실물을 연준 금고로 들여오고, 채권 값에 해당하는 돈을 시중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국채 6천억 달러 어치를 사들이는데, 이걸 사실상 새로 찍어내는 돈으로 산다고 해서 미국 언론들은 'FED(연준)에 돈 찍는 프레스기를 설치한 셈'이라느니, '공기에서 돈을 만들어낸다(making money out of thin air)'느니, '헬기로 돈을 뿌리는 셈'이라느니 하는 다양한 비유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주 쓰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버냉키 연준 의장의 성모마리아 패스(Hail Mary Pass)'라는 겁니다.
벤 버냉키의 연준은 지금 192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어려운 경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가안정과 고용증대를 위한 경제운용이 연준의 임무인데, 지금 연준은 물가 안정은커녕 물가 침체로 인한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일견 좋을 것 같지만, 경제전체로는 그리 바람직한 상황이 못됩니다. 집값, 차값, 옷값 등이 앞으로 점점 싸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지금 돈을 쓸까요? 석달 뒤, 6개월 뒤, 1년 뒤를 기약하고 지갑을 닫을 겁니다. 누구나 지갑을 움켜쥐고 버티기 시작하면 기업은 이익을 남길 수 없고, 고용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투자도 늘릴 수 없습니다. 경제가 축소되고 침체됩니다. 이게 디플레이션입니다. 경제를 운용하는 전문가들은 물가가 뛰고 거품이 생기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더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the lost decade)"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국경제는 2008년 가을의 금융위기 이후 일본식 디플레이션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걸 1차, 2차 QE라는 돈의 힘으로 막아보려는 것이 연준의 몸부림입니다. 2차QE에 따른 채권매입이 실제 시작된 것은 지난주입니다만, 이미 8월경부터 미국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는 이것이었고, 앞으로도 몇 달 동안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이 '양적완화'가 될 것입니다. 연준은 어느 정도 페이스로 국채를 매입(다시 말해 돈을 찍어낼) 것인가? 그 결과 물가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고용은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 고용이 늘지 않는다면 그 때는 또 어쩔 것인가? 등등..수많은 질문이 줄을 서 있습니다.
"돈을 더 찍어내 뿌리면 경제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날 것이다"라는 전제에는 엄청난 반대도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공화당 계열의 경제학자들의 반대가 거셉니다. 벤 버냉키와 연준 이사들이 간단하게 생각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벤 버냉키는 그야말로 눈 질끈 감고 하프라인에서 롱 패스를 던지는 쿼터 백의 심정으로 전대미문의 실험에 몸을 내던진 겁니다. 경제를 살릴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민간수요가 늘 곳은 없고, 정부의 예산지출로 경기를 부양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중간선거에서 이긴 공화당은 ‘예산지출 절감’을 선거구호로 내세워서 승리했습니다. 경기부양용 지출에 대한 대규모 삭감이 시도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미국판 '잃어버린 10년'을 맞느니 인플레와 거품경제의 위험을 무릅쓰고 돈이라도 찍어내 보는 겁니다.
버냉키의 계산대로라면 경제는 이런 순환으로 풀려나가야 합니다.
국채를 계속 연준이 사들인다
→ 국채 값이 올라가고 이자율은 떨어진다(국채 사겠다는 수요가 많아지면 국채를 발행하면서 이자를 덜 붙여줘도 되니까 이자율이 떨어집니다)
→ 국채 이자율에 연동되는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하락한다
→ 다른 장기 금리도 더욱 하락한다
→ 은행은 돈 빌릴 곳이 없고, 투자가는 금리 투자가 재미없어지니까 보다 리스크가 큰 사업이나 중소기업 대출 등으로 돈을 돌린다
→ 경제에 숨통이 트이고, 고용이 늘어난다.
그러나, 현실은 삐걱대며 예상과 다른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 채권 매입조치가 시작되자, 떨어져야 될 국채 금리가 오히려 오르는 추세를 보이는 겁니다. (즉, 채권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 미국 10년 만기 미국국채의 금리는 2.7%, 30년 만기 채권의 금리는 4.3% 정도 합니다. ) 이를 두고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은 '채권투자가들의 반란'이라며 연준의 'QE (양적완화)2' 승부수가 실패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돈을 찍어내 빚을 늘리면 그만큼 부실해 지는 것인데, 투자가들은 부실한 나라 채권을 외면하게 마련인지라 ‘팔자’에 나서고 있다는 겁니다.
중립적이거나 진보적인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입니다. 채권투자가들이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파는" 전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건데요. 투자가들은 버냉키가 '2차 양적 완화'조치를 시사한 8월 이후부터 낮은 가격에 국채를 꾸준히 매입했고, 이제 사 줄 기관(연방은행)이 매수에 나서니까 보유 국채를 내다팔아 차익을 챙기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단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깊은 주머니를 찬 연준이 계속 매물을 받아주다 보면 결국 연준이 의도한 대로의 결과 (매수세가 우세하여 채권 값이 오르고 이자율은 떨어짐)가 나올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런 논란은 연일 뉴욕의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논란을 벌이는 전문가와 언론인들조차, 미국 역사상 이렇게 사방에서 연준을 괴롭히고 흔든 적이 없다고 평할 정도입니다. 여기에, G-20을 무대의 하나로 삼아 벌어진 국제적인 환율 갈등까지 더하면, 버냉키 의장과 연준이 얼마나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성모 마리아여, 도와주소서!'를 외치고 싶지 않겠습니까. 미국경제의 쿼터 백이라 할 수 있는 버냉키의 '성모 마리아 패스'가 성공한다면 한국경제의 안정적 운용을 위한 대외환경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모마리아여, 버냉키의 패스를 도우소서!"
절박한 승부수…연준의 "QE2"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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