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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감정 때문에, 중·일 FTA는 후순위"

최근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사통신이 함께 마련한 한·중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행운을 누린 바 있습니다. 전에도 중국을 가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기관 몇 군데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어서 중국을 좀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방문한 기관 가운데 '중국사회과학원'이 있었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의 여러 정책을 뒷받침하는 두뇌집단이지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한·중 FTA는 내년 본격적인 정부 간 협상 전에, 민감 분야에 대한 사전 의견 교환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야는 아무래도 한국 측에서는 농산물 등이고 중국 측에서는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입니다. 한·일 FTA는 논의가 중단된 상태지만, 한·중 FTA는 두 나라 정상들이 만날 때마다 거론하면서 '추진 가속화' 등을 언급할 정도로 차근차근 진행돼 왔습니다. 경제계에서는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체결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보면서 한·중 FTA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농민들은 강하게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지요.

중국사회과학원, 한·중 FTA에 신중한 모습

중국사회과학원의 입장은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였는데, 이 문제에 답변한 금융연구실 주임 후빈(胡滨)박사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① 두 나라 경제 발전 수준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FTA 체결에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농산물 문제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② 자동차와 철강, 농산물과 방직품 등이 각각 상대국에 주는 충격이 크므로 FTA 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③ 한국 경제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구역 일체화'를 가져오는 FTA에 더 큰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랄 수 있는 후 박사의 말을 들으면서, '내년 한·중 FTA 정부 협상을 앞두고 미리 한 자락 깔아 두는 전략적 접근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흥미로운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중·한 FTA가 중·일 FTA보다는 먼저 체결돼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은 놀라웠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민족 감정'이다. 중·일 간에는 역사 문제가 있다. 그러나 중·한 간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 두 번째는 지리적 요인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가깝다. 세 번째는 중·한 간 무역 관계 문제다. 한국은 중국의 제1 무역 대상국이다."

"반일 감정이 중·일 FTA 장애 요소"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이 맨 먼저 FTA를 체결한 나라가 지구 건너편 칠레였으니까요. FTA는 자유무역을 통해 자국이 어느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실리를 챙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게 우선이라는 점에서, 특정국과 무역 거래 규모를 갖고 우선순위를 판단한다는 주장 역시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민족 감정' 즉 '反日 감정'을 제일 중요한 요인으로 언급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난징대학살 같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이 좋지 않은데다, 최근 영토 분쟁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중국과 일본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중국인의 79%가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답했고, 일본인의 87%가 중국을 믿을 수 없다고 답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우리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FTA 협상 과정에서 '국민감정'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미 FTA와 한·EU FTA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현격한' 반대 강도의 차이는 '반미 감정' 을 빼고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뇌집단의 학자가, 한국 언론인들 앞에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중·일 FTA에 관해, 이렇게 '민족 감정' 을 내세우며 비관적 전망을 내세우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중국 경제학자들의 정치적 접근 방식

차라리 한국과 격차보다 더 큰 일본과 기술 격차 등을 협상 후순위의 근거로 제시했다면 납득했을 텐데, 혹시 중·한 FTA에 비해 중·일 FTA가 중국에 더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경제적' 판단을 이미 내려놓고는 소극적 태도의 근거로 '정치적' 요소를 끌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센카쿠열도, 중국 이름 댜오위다오 갈등 이후 중국에서는 젊은 대학생과 실직자 등이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를 외치며 반일 시위를 벌였습니다. 구직난에 시달릴 대학생들이 일본을 분풀이,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중국 정부가 시위를 뒤에서 '조종'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방조'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눈치입니다. 일본이 뚜렷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일 감정에 관한 중국 경제학자들의 정치적 접근 태도 역시 일본의 의심을 부채질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중국의 반일 시위에서 공격받은 대형 쇼핑센터 <이토 요카도>를 비롯해 중국 어디서나 일본 자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직 개발할 곳이 많은 중국으로서는 일본 자본의 적극적 진출을 여전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 부합하게, 다시 말해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중국의 '국가 학자'들은 자국민들의 반일 감정도 적절히 활용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결국 나중에는 이따금 만들어지는 혐한(嫌韓) 분위기도 활용해 한국과 무역 거래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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