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이니 벌써 한 달 가까이 된 이야기입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생인권의 날을 선포하고 지난달 경기도의회에서 통과된 학생인권조례 공포식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인권이라…어찌 보면 당연한 권리로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학생이 무슨 인권이냐 싶기도 했습니다.
제법 두꺼운 책자에 빼곡히 조항들이 적혀있긴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안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명료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스스로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겁니다.
학교운영에 대한 의사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쉽게 떠오르는 예로) 복장이나 두발 등 사실 자유롭게 하더라도 학업이나 생활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지금껏 갖가지 이유로 규제하고 억눌러왔던 것들부터 학생들 스스로의 의견을 묻기로 한 겁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던지 10년쯤 지났지만 저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고등학생들은 머리를 획일적으로 짧게 잘라야 했던 건지, 왜 내 머리가 길면 선생님이 무시무시한 가위를 들이대도 저항할 수 없던 건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학생은 다 그래야 하니까?' 이제 그 기준을 학생들 스스로 정해보라는 겁니다. 두발규제는 하나의 단적인 예일 뿐입니다. 복장 등을 단속하는 교문지도도 금지, 체벌 금지 등 여러 혁신적인 안이 담겨 있습니다.
뉴스가 나간 후 일부 시민단체의 지적도 있었지만, 2분 가까운 리포팅 시간에 학생인권조례와 의미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심도 있게 짚지 못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운명은 이 조례의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1차적으로는 학생, 나아가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는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의 인식과 관심,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인권조례 공포식이 열린 수원의 청명고등학교(이 학교는 경기도 학생인권 시범학교이기도 합니다)를 벗어나 길거리에 나서자,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학생인권조례에 무관심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고등학생, 그것도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학생인권조례요? 그게 뭐예요? 뭐 좋은 거라면 몰라도 솔직히 아이들 성적, 대입이 더 걱정이죠"라고 말해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손가락질하기엔 여전히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은 대입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인권조례는 여전히 혁신적이고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일각에서는 '인권의 개념'조차 잘 모르는 '아이들'이 책임 없는 자유에 취해 막 나가게 될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가 기우일지 모릅니다. 인권의 개념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 있어도 그걸 스스로 체득해가는 과정,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게 인권조례의 지향점입니다.
나아가 10대 청소년들을 '아이'로 부르지 말고 '학생'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하는 풍토를 만드는 건 나아가 학생들이 성인이 된 후에 어떤 세대로 이 사회에 녹아들지를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인권조례가 정착이 되고 확산이 되면 지금 중, 고등학생 세대들은 10년 쯤 선배인 제 세대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몸에 체득한 체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입니다.
김상곤 교육감에게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감 선거 공약이었습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와 욕심이 있었을 겁니다. 모든 시도교육청의 교육감이 진보교육감인 건 아닙니다. 당장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습니다. (경기도에 축하 메시지는 가장 인상적으로 보냈지만요)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관련법을 정비할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도록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학생들을 계속해서 '계도'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주겠다는 의도도 보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능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틀 안에 가두고 억압적으로 지도, 계도하던 시절이 이제는 끝났다는 걸 학생인권조례는 상징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환경을 가꿔가는 일은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도 맞고, 좀 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요? 그게 뭐예요?
경기도교육청의 참신한 실험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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