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55㎏급에 출전하는 최규진(26.조폐공사)에게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처음 밟아 보는 종합 국제대회다.
스물여덟살의 정지현(삼성생명)이 이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늦은 데뷔인 셈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레슬링을 시작해 매트 위에서 뒹군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동안 최규진의 이름은 늘 2등이나 3등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실력 있는 선배와 동기들에게 늘 졌기 때문이다.
최규진의 체급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레슬링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던 박은철(주택공사)과 동년배 1인자 이정백(삼성생명) 등이 버티고 있었다.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편이다 보니 남들은 전성기를 맞는다는 20대 초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항상 문턱에서 주저앉았고, 그 탓에 방황도 많이 했다.
최규진은 "레슬링을 그만두겠다고 뛰쳐나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철없이 '내가 이거 안 해도 잘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했다"며 다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황하던 최규진을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방대두 현 레슬링 대표팀 총감독이었다.
당시 상무 레슬링팀을 맡고 있던 방 감독은 대학교 3학년 때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다시 3등에 머물고 좌절해 있던 최규진에게 입대를 권했다.
한국 레슬링계에서 이름난 조련사로 꼽히는 방 감독을 만나면서 최규진의 잠재력이 뒤늦게 꽃을 피웠다.
기술에 선수를 맞추지 않고 선수에게 맞는 기술을 찾아내는 방 감독의 '맞춤 지도'가 효력을 발휘했다. 또 어머니처럼 세심하게 배려하는 지도 방식이 방황하던 최규진을 다잡았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항상 한 걸음씩 앞서갔던 동년배 이정백을 입대 후 처음 맞붙은 시합에서 꺾은 것이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벽을 쌓아뒀던 이정백을 꺾으면서 자신감도 붙었고, 최규진은 이후 거침없이 상승세를 탔다.
제대한 이듬해인 2009년 대표선발전 결승에서 다시 이정백을 꺾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고, 바로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차전에 맞붙은 유럽 챔피언 야니 하파마에키(핀란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국제대회 경험이 거의 없었던 탓에 체력 안배를 하지 못해 2차전에서 테크니컬 폴로 완패하긴 했지만, 가능성을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최규진은 올해 5월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단숨에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표팀의 가장 큰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목표로 내건 방대두 총감독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선수도 바로 최규진이다.
강인한 체력을 앞세워 스탠딩 자세에서부터 상대를 괴롭히는 최규진의 경기 스타일은 방 감독이 지향하는 한국 레슬링의 발전 방향과도 일치한다.
다만 그라운드 기술 방어가 약점으로 지적돼 온 만큼 이를 보완하는 데 집중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최규진의 경쟁자로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미드 수리안 레이한푸르(이란)과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자 하세가와 고헤이(일본) 등이 꼽힌다.
대한레슬링협회는 이들과 붙었을 때 최규진의 승률은 반반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은 만큼 체력의 우위를 앞세우는 최규진의 경기 스타일만 잘 살아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최규진이 광저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한국 레슬링에도 오랜만에 찾아온 경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레코로만형 경량급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안한봉(57㎏급)이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1996년과 2000년 심권호(48㎏급, 54㎏급)가 금메달을 따내는 등 대표적인 금메달 텃밭이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1986년 김영구가 48㎏급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4개 대회 연속으로 최경량급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나 2000년대 들어와 더는 금메달리스트가 배출되지 않고 있다.
무려 12년 동안 스타의 계보가 끊어진 55㎏급에 도전하는 최규진은 "내 손으로 금맥을 다시 잇겠다"며 선전을 벼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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