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미국 재판을 지켜보면서...

갑을이 뒤바뀐 의뢰인과 변호인의 관계...

가을볕이 따사롭던 지난 13일 오후 워싱턴 DC의 연방지방법원 앞입니다. 차 뒤쪽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SBS 워싱턴 지국의 정현덕 카메라맨, 그 왼쪽에 얼굴만 보이는 친구가 지국의 코디네이터인 고현승군입니다. 워싱턴 특파원이 법원에는 왜 갔느냐고요? 서울에서야 정당이다 법원이다 정부부처다 해서 출입처가 정해져 있지만, 특파원으로 있는 동안에는 출입처가 따로 없습니다. 이 날은 한국계 미국인이자 핵 전문가인 스티븐 김의 간첩법 위반 사건의 첫 공판이 있었습니다.

스티븐 김은 미국땅에서 한국계로 산다는 것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한 차례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43살의 나이고요, 겸손하고 점잖은 인상을 주는 사람입니다. 9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조지타운대와 하버드,예일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한 고급두뇌이기도 합니다. 2000년부터 미국 국립핵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수시로 백악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방부, 국무부로 파견돼 핵문제에 대한 자문역할을 해왔습니다. 성공한 코리안 아메리칸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하거나,기러기 아빠와 엄마가 되기로 작정한 부모들이 자녀들의 롤모델로 삼을 만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스티븐김이 돌연 미국 법무부로부터 간첩혐의를 받아 기소됐습니다. 지난해 6월 폭스뉴스 기자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해 보도하도록 했고, FBI 조사과정에서 폭스뉴스 기자를 만난 사실을 부인한 위증혐의까지 추가됐습니다.

그 첫 공판은 저에게도 미국에서의 첫 법정 취재이기도 했습니다.일단 미국법정은 한국법정과 비슷한 인상을 줬습니다. 화면 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제 눈으로만 찍고 나왔습니다만, 판사석 아래 법원 직원들이 부지런히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고, 그 앞에는 판사를 바라볼 때 왼쪽에 피고인과 변호인, 오른쪽에 검찰석이 있었습니다. 의외였던 것은 방청석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는 거지요. 방청석 자리를 다 채워도 한 60명 될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엄격한 법원의 제한 때문에 재판관련 뉴스를 미국 방송사들이 보도하면서 법정안 장면은 그야말로 그림을 그려서 소개하는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스티븐 김 사건의 재판장은 여성 판사였는데요, 한 50대 정도 돼 보였습니다. 이제 재판이 시작되는 단계이니까 자료를 충분히 법원에 제출하고,변호인과 검찰 모두 주장하는 바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공판 날짜를 내년 1월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하지만 변호인측이 이의를 제기해 결국 판사와 변호인, 검찰이 협의한 결과 12월 20일로 정했습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압수해간 스티븐 김의 컴퓨터에는 사적인 부분도 있는 만큼 그 부분은 빨리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검찰은 자료 분석에 시간이 걸린다면서 당장 응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30분정도만에 재판이 끝나고 저는 부지런히 움직여서 변호인과 검찰,스티븐 김을 모두 만났습니다. 그러나 검찰에게서 들은 대답은 'No comment"가 전부였고, 스티븐 김으로부터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변호인은 아주 충분히,자세히 인터뷰했죠. "스티븐 김이 폭스뉴스 기자에게 얘기했다는 내용이 도대체 국가기밀이나 되는 것이냐? 북핵문제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더구나 스티븐 김이 돈을 받고 정보를 판 것도 아니고, 문서를 건넨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검찰은 지금이라도 기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도웰이라는 이름의 변호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로 탄핵소추를 받았을 때 대통령측 변호인으로 활동한 지명도 있는 변호사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수임료도 아주 비싸서 시간당 100만원 가까운 큰 돈을 받는다는 거죠. 그 것도 의뢰인과 직접 만나 상담하거나 재판정에 오는 일정 말고, 의뢰인을 위해 변호사 개인적으로 일한 시간도 포함된다니까, 변호사가 부지런히 뛴다면 의뢰인으로부터 상당한 돈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스티븐 김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 날 제 취재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티븐 김과의 인터뷰를 시도할 때였습니다. 미국 정부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 간첩으로 몰려 재판 받게 된 심경을 짧게 대답해 달라는 요청에 스티븐 김도 응할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변호인이 큰 목소리로 부르자 "오늘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죄송합니다." 하고는 그냥 가버리더군요. 이후 큰 길까지 걸어가 택시를 타는 스티븐에게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스티븐 김은 잔뜩 굳은 얼굴로 아무런 대꾸없이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뒷좌석 가운데 스티븐 김이 앉고,그 양쪽에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이 탔습니다.변호사은 앞좌석에 앉았고요. 그 모습도 그렇고, 이 날 스티븐 김과 변호인이 보여준 행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국 같으면 변호사에게 비싼 돈을 준 의뢰인들은 이런 저런 요구를 많이 할 것입니다. 물론 무죄를 받아내거나,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재판에서 관철시켜주는 게 가장 중요한 요구이겠죠.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의뢰인이 변호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 못지 않게 변호사도 의뢰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한국의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날 스티븐 김과 도웰 변호사의 관계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변호사가 단호하게 의뢰인에게 주의를 줬고, 의뢰인은 변호사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니,비싼 돈 주고 대접도 못받나?"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충분히 되기도 합니다. 사안 자체가 간첩혐의라는 중대한 사건이고, 사건의 한 복판에 언론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언론과의 접촉에 신중해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대언론 창구는 변호사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 역시 수긍이 됩니다. 미국 법원이 하는 재판이라지만, 한국 언론에 보도가 나갈 경우 이런 저런 경로로 판사와 검찰에게 그 내용이 흘러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겠죠. 어쨌든 3년동안 검찰과 법원을 출입한 제 경험에 비춰볼 때 미국 재판에서 변호인과 의뢰인의 관계는 분명 한국의 그 것과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결국 재판이 끝날 때까지, 스티븐 김과의 인터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사적으로 만나는 것이야 별개로 치고 말이죠. 그러다 보니 미국 법무부가 스티븐 김을 기소한 시점이 하필이면 위키리크스에 아프간전 관련 기밀 문건 수만건이 유출된 직후인지, 오바마 대통령과 정보국장이 나서 정보업무에 종사하는 미국 공무원들에게 기밀 준수를 거듭 요구하는 상황에서 하필 한국계 미국인인 스티븐 김 사건이 타겟이 됐는지 하는 궁금증,그리고 미국에 와서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주류사회까지 진출했는데 느닷없이 간첩죄로 기소된 지금 상황에 대한 스티븐 김의 얘기가 SBS뉴스로 나가기는 조금 힘들어 보입니다. 다만 스티븐 김사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힌트가 있습니ㅏ다. 미국 법무부가 스티븐 김을 기소하면서 스스로 밝힌 내용입니다."오늘 기소는 국가의 민감한 안보자료를 다루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앞으로 재판이 끝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은데,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서 판사가 어떤 결론을 내릴 지 궁금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