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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의 불편한 현실

지난 5월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프랑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 가운데 하나가 외규장각 도서 문제였습니다. 일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프랑스와의 현재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였고, 또 여러 매체와 경쟁을 하고 있는 기자로서 이 문제에 관한 기사로 '물을 먹으면' 평생 만회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랬습니다. (물론 이 문제로 특종을 하게 되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부임해서 보니, 외규장각 문제는 그 과거의 역사만큼이나 현실과 미래가 불투명하더군요. 외규장각은 조선의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이었습니다. 여기에 보관돼있던 도서 279권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약탈당해 100년 이상을 머나먼 이국의 낯선 도서관 서고에 처박혀 지내야 했죠. 그러다 1975년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으로 있으면서 도서의 행방을 추적해오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그렇지만 1991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도서 반환을 공식 요청할 때까지 또 16년의 세월을 묻혀 지냅니다. 그로부터2년 뒤인 1993년 프랑스 TGV가 한국의 고속철도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합니다. 도서 반환의 가장 중요한 계기였던 이 때, 달랑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을 갖고 온 미테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지금도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상호 교류와 대여’라는 원칙에 합의합니다.

이 원칙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지금도 '등가 등량의 상호 대여'가 기본원칙이고 '영구 대여'라는 표현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국내로 돌아온 <휘경원원소도감의궤>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현재 '대출중'으로 처리돼 있다죠. 물론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아직도 기본적으로 '도서의 반환'이라는 입장을 갖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협상을 할 때는 1993년의 정상회담 합의 내용이 족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뿐 아니라, 11월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차기 의장국인 프랑스 역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프랑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문화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 이 문제 때문에 양국간의 관계가 껄끄러운 채 유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죠. 다만, 프랑스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 문제의 해결이 '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만은 절대 고수하고 있습니다. '대여'라는 용어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뒤집어서 볼 경우, '대여'를 통해 그냥 실효적 소유권을 넘기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대여'를 받고 그 기간을 영속적으로 연장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실효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휘경원원소도감의궤>처럼.

실제로 프랑스 입장이 '상호대여'에서 '상호'를 뺄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우리입니다. '영구 대여'에 대해서도 마뜩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아무리 실효적 소유권을 넘겨받는다고 하더라도 ‘대여’라는 용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거죠.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약탈 문화재 반환에서도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구요. 그래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외교부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G20까지는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1993년만큼은 아니지만, 17년 만에 다시 맞이한 좋은 기회를 놓치면, 내년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G20에서나 다시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 좋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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