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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30분에 50만 원? 환상의 투잡족

정부 산하기관들의 방만 경영 문제는 잊을만 하면 터져나오는 단골 뉴스입니다. 회사 실적은 적자인데 직원들에게 거액의 상여금을 펑펑 쏟아붓거나, 출근하지도 않은 직원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하는 일. 또 비자금을 조성해서 여러 곳에 향응을 제공하고, 입찰 과정에서 부적절한 업체를 선정하는 일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개인 회사가 아니어서 주인이 없다보니 '좋은게 좋은거다' 라는 식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방만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만든 장치 중 하나가 외부인으로 구성된 비상임이사입니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비상임이사 자체도 상당히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일단 비상임이사들에게 지급되는 월 급여나 거마비(회의참석비) 같은 수당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지난주 경기도의 한 정부 산하기관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비상임이사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회의는 30분 만에 간단히 끝났습니다. 이렇게 30분만 회의를 해도 비상임이사들은 거마비, 즉 회의참석비 명목으로 50만원을 받습니다. 보통 한 달에 전체 이사회 한 번, 비상임이사회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회의를 하니까 비상임이사들은 거마비로만 한 달에 100만 원을 받습니다. 여기에 활동비 명목으로 한 달에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의 수당도 받습니다. 비상임이사들의 상당수가 교수나 기업 CEO, 연구원 등으로 본업을 갖고 있다고 하니, 이들은 왠만한 샐러리맨의 연봉을 부가 수입으로 얻고 있는 셈입니다.

언듯 봐도 '이건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거마비인데... 이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공기업과 소관기관은 예산을 집행할 때, 매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기업 · 준정부기관 예산  집행지침'을 따르도록 돼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회의참석비는 1일당 70,000원을 지급하되, 참석시간이 2시간 이상일 경우에는 1일 1회에 한하여 30,000원을 추가 지급할 수 있음..."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회의 1번에 10만 원을 넘으면 안되는 거죠. 그런데 지식경제부 산하 정부기관 60곳 가운데 이 규정을 지킨 곳은 한국표준협회 딱 한 곳 밖에 없습니다. 또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 KOTRA 등 16곳의 기관은 거마비와 월 활동비를 동시에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상임이사에게 지급하는 월 200~300만 원의 활동비에는 회의 참석 수당이 포함돼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거마비를 추가로 지급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규정에 나와있는데 왜 상당수의 기관들은 수당을 아낌없이 지급하고 있는 걸까요?

이와 관련해 정부 산하기관의 한 직원을 만났는데,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는 곳이 이사회인데, 괜히 이사회를 서운하게 할 필요가 뭐가 있냐는 겁니다. 다른 산하기관에 비해 수당 등 각종 처우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면 그만큼 자신들의 업무 처리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기관의 수준에 맞추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수당 문제 뿐이 아닙니다. 비상임이사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지분이 절반이 넘는 강원랜드의 경우 전체 이사 17명 가운데 비상임이사가 15명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비상임이사 비율은 무려 93%이고,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86%,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83%, 한국세라믹기술원 80% 등 상당수 기관의 절반 이상은 비상임이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3월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임이사 비율 축소를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통과시켰습니다. 현재 1/2을 초과하도록 돼 있는 비상임이사 비율을 1/3 미만으로 축소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권고 대상인 산하기관 22곳 가운데 이를 지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입니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비상임이사들이 너무 많다보니, 기관 직원의 불만도 높습니다. 비상임이사들이 각자 자신의 본업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산하기관의 세세한 업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그렇다보니 안건에 대해 정확히 파악을 하지 못한 채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한 직원은 "내용 파악도 정확히 못하면서 회의에 적극적으로 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정말 어렵다. 다들 사회적인 지명도도 있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공개석상에서는 반박도 못한다" 고 하소연했습니다. 뭔가 문제는 있는데, 굳이 긁어부스럼 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에 참 씁쓸했습니다.

정부 산하기관의 비상임이사제도가 방만 경영을 견제하기는 커녕, 스스로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일이니 만큼, 선발과 운영과 관련해서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규정과 감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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