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소재 모 대기업 간부 A(55)씨는 최근 눈 뜨고 '보이스 피싱(전화금융사기)'을 당하고 망연자실했다.
A씨가 보이스 피싱으로 2천630만 원을 뜯긴 것은 지난달 30일.
사무실로 우체국 집배원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우체국 신용카드가 발급돼 두 차례 집을 방문했으나 집이 비어 그냥 돌아왔다"는 말에 우체국 신용카드를 신청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집배원은 "그럼 금융 정보가 샌 것 같다. 요즘 이런 사건이 많다고 한다"며 불안감을 조성한 뒤 "금융감독원에 신고해 봐라. 하도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면서 '친절히'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덜컥 겁이 난 A씨는 곧바로 알려준 번호로 전화했고 한 남성이 금감원 과장이라며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A씨에게 자신의 소관이 아니니 민원실로 알아보라며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자신들을 의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고도의 술수로 풀이된다.
A씨의 전화에 민원 담당이라는 남성은 전후 사정을 듣고 나서 "계좌에서 돈이 새고 있다. 빨리 조치해야 한다"며 비밀 번호 등을 물어봤고 다급한 A씨는 모든 정보를 다 알려주고 말았다.
그러나 어딘지 찜찜했던 A씨는 인근 거래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 조회를 했지만, 한발 늦은 뒤였다.
불과 몇 분 사이 2천630만 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간 것.
A씨는 은행 관계자가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것 같다는 말에 허탈해하면서 부랴부랴 지급 정지 조치를 취했다.
경찰에 피해 신고를 했지만, 대포 통장을 여러 개 거친데다, 이미 돈이 현금으로 빠져나간 뒤고 범인들이 사용한 전화도 대포폰이어서 추적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인들이 금융기관의 시스템과 금감원 기능, 인출 시스템 등을 잘 아는 전문 보이스 피싱 사기단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전화 발신지 등을 추적하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다고 할 수 있는 대기업 임원도 집배원, 금감원 과장, 민원실 직원으로 이어진 고도의 '사기극'에 당한 것이다.
전남체신청 관계자는 "우체국에서는 자체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고 우체국도 금융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면서 "피해 예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들어 4일 현재 전남체신청 산하 우체국 직원들이 이런 사기 사건을 막은 것만 17건에 총 4억 8천만 원에 달했다.
또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체국, 은행 등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 피해는 6천 720건에 피해액은 621억 원으로 매일 18.4건꼴로 발생했다.
범인들은 중국 등 국외 조직과 연계하면서 개인 정보 수집담당, 전화 담당, 인출 담당 등으로 역할을 세분화해 활동하면서 경찰의 눈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등을 사칭해 환급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고, 금융기관인 것처럼 해 요금이 연체됐다거나 카드가 도용됐다며 개인 정보를 캐내는가 하면 최근에는 택배가 반송됐다거나 경품에 당첨됐다고 속여 송금을 유도하고 있고 대담하게 수사기관을 가장해 범죄에 연루됐다며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갈수록 지능화하면서 금융 업무에 어두운 시골 노인은 물론 공무원, 대기업 간부 등 사회 지도층과 고학력자도 심심찮게 피해를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그런 뻔한 수법에 넘어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보이스 피싱 일당의 교묘한 수법에 걸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잦다"며 "사기단에 송금한 뒤라도 거래은행 콜센터에 신속히 지급정지를 요청해 현금 인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연합뉴스)
대기업 임원 금감원 사칭 '보이스 피싱'에 낭패
덜컥 겁이 난 대기업 임원 A씨…2600만원 뜯겨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