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에 열렸던 김황식 국무총리(당시는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첫 날. 질의가 시작되기 직전 민주당 소속 정범구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합니다.
정 의원은 "국회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은 3권 분립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청문회 16시간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여야 지도부가 술과 밥을 곁들인 회동을 한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더 적절치 않다"면서 문희상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에게 유감 표명을 요구합니다.
문득 조간신문에 실렸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둥근 테이블에 이명박 대통령이 앉아서 팔을 뻗고 있고 민주당 원내대표로 비대위 대표이기도 한 박지원 의원이 예의바른 자세로 선 채로 몸을 숙여 잔을 부딪치는 장면이었습니다. 화기애애했던 만찬장 분위기와 함께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공직 후보자들을 줄줄이 낙마시킨 민주당의 리더, 박 원내대표의 이번 청문회에 대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정 의원이 문제 삼은 것은 바로 그 장면입니다. 바로 다음날 오전이면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립니다. 인사청문특위까지 구성해서 의원들은 여야 불문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했겠지요. 공격이든 방어든 말이죠. 인사청문을 요청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바로 청문회 전날 청문을 담당한 국회 지도자들을 모두 청와대로 불러 술을 곁들인 만찬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정 의원이 언급했던 3권 분립 같은 것까지 갈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사실 이건 상식의 문제, 양식의 문제이지요. 비유하자면 내일 면접을 볼 건데 전날 밤에 면접관들 모아서 만찬을 여는 것이고, 내일이 감사 받는 날인데 전날 밤에 감사관들을 모아서 접대를 하는 겁니다. 기본적인 윤리와 상식을 벗어난 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정 의원이 이런 지적을 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청와대 만찬이 갖는 이런 몰상식함에 대해 어느 언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간신문에 실린 사진을 봤던 저도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번 청문회에는 별 생각이 없나보다'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 그 만찬이 갖는 문제 자체를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감이 떨어진 것이겠지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그렇다 치더라도 박희태 국회의장은 법률가입니다. 검사로 출발해서 법무부 장관도 지냈지요. 그런데 여야 국회 지도부를 대동하고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전날 인사청문을 요청한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러 청와대에 갔습니다. 국민의 대표들인 국회의원들의 수장, 행정부를 견제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박희태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등 청와대에 간 사람이나 이들을 초청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다음날 있을 인사청문회에 대해서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과연 지난번 김태호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전날에도 이런 모임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혹시 김태호 후보자의 낙마 사태를 보고, 별 일 없을 것 같으니까 편하게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까요?
제가 정범구 의원의 지적을 트위터에 소개했더니 "좋은 게 좋다는 정신이 3권 분립 정신을 잡아먹은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더군요. 달리 제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를 운영하는 분들이 조금씩만 더 원칙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