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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보여 죽였다" - 35일 간의 수사, 진실은···

"행복해 보여서 죽였다".  보도자료에 적혀 있던 피의자 33살 윤모씨의 말이었다.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으로 얼룩진 경찰 보도자료가 갑자기 실존주의 소설처럼 보였다.

경찰서 정문에서 윤씨를 만났다. 정말 그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윤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났다.

"왜 하필 그 가족이었나요?"

"나 자신은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저와 비교돼 가지고.."

수십 명의 기자와 10여 대의 카메라 앞에서도 윤씨는 말문을 닫지 않았다. 너무 주저함이 없어 묻는 내가 민망했다.

인생 절반, 14년 6개월 복역. 사회 생활은 불과 3개월.

1977년생인 윤씨는 만 열 아홉 살 때 강도와 성폭력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인생의 절반 가까운 14년 6개월을 순천교도소에서 보낸 뒤, 올해 5월 7일에 출소했다.

2010년 8월 7일, 사건이 있었던 그날까지, 윤씨는 이 사회에서 성인으로 고작 3개월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웃음 소리 때문이었다.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놀이터에서 앉아 있던 윤씨는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웃음 소리가 들린 곳으로 올라갔다. 옥탑방 문은 열려 있었다.

42살 여성 장씨가 14살난 딸, 11살 난 아들과 함께 즐겁게 TV를 보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6시,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배낭 안에 있던 망치로 장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안방에서 동갑내기 남편 임모씨가 나왔다. 맞붙었다. 과도를 꺼냈다. 양쪽 옆구리를 한 번씩 찔렀다. 임씨가 무너졌다. 윤씨는 달아났다. 칼에 찔린 남편은 숨졌고, 아내는 가까스로 살아났다.

검거는 시간 문제일 줄 알았는데...

사건을 맡은 곳은 마약 피의자를 고문한 혐의로 강력팀장이 구속된 양천경찰서였다. 명예회복의 기회였다. 형사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증거도 많았다.

즉각 900곳의 CCTV를 확보했다. 34곳에서 윤씨의 모습이 나왔다. 현장에 흘리고 간 청색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아버지 살해 장면을 목격한 아이들의 진술도 일치했다. 틀림 없었다.

CCTV 속의 윤씨는 휴대전화를 몇 차례 사용했다. CCTV에는 윤씨가 휴대전화를 쓴 장소와 시각이 정확히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같은 시간대에 인근 기지국을 거쳐간 통화 기록 2만 5천여 건을 통신사로부터 넘겨 받았다. 검거는 시간 문제라고 경찰은 확신했다.

없었다. 통화기록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피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급해졌다. 사건 현장인 신정동 인근 4천 세대를 훑어봤다. 의심스런 남성 140명의 DNA를 채취했다. 현장에 남은 피의자의 모발에서 나온 DNA와 비교해봤다. 허탕이었다.

초조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경찰청장이 바뀌었다. 서울지방경찰청장도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보스에게 양천경찰서장은 첫 대면에서 미제 살인 사건을 보고할 자신이 없었다. 형사과 사무실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국가 운영 시설 입소 덕에 감시망 피해

9월 12일, 단서도 다 떨어져 무작정 탐문에 나선 박 경사와 파트너 앞에 CCTV에 나온 모습과 똑같은 옷 차림을 한 윤씨가 나타났다. 붙잡았다. 윤씨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언젠가는 잡힐 거라고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공개 수배 된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윤씨의 거주지로 찾아갔다. 법무부 산하의 출소자 지원기관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를 죽인 뒤에도 한 달 넘게 나라가 윤씨에게 밥을 먹여줬다. 윤씨의 방에서는 임씨를 찌른 과도가 나왔다. 칼날은 10cm 였다. 경찰은 하루 동안 윤씨를 취조했다.

아픈 사실이 드러났다.

윤씨는 강력 범죄 전과자 가운데도 재범 가능성이 가장 높은 1등급 우범자로 분류돼 있었다. 경찰청은 3등급 우범자까지도 관할 경찰서에서 등록해 관리하도록 지난 3월 지시했다.

윤씨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는 서울 서부경찰서 관할이었다. 그러나 서부경찰서 형사가  찾아갔을 때 윤씨는 이미 법무보호복지공단 시설에 입주한 상태였다.

서부서 형사들은 윤씨를 행방불명 처리했다. 국가가 지켜보겠다고 다짐했던 1등급 우범자는 역설적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시설에 입소한 덕에, 국가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양천경찰서도 윤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지 않았다. 4천 세대를 방문하고, 조금이라도 의심할만한 구석이 있는140명의 DNA를 채취했지만, 정작 1등급 우범자인 윤씨를 찾진 않았다. 사건 현장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에 윤씨의 거주지가 있었지만 놓쳤다. 법무부 산하 시설은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등록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CCTV에 나타난 윤씨의 휴대전화 사용 장면에 집착한 탓에, 경찰은 통신 기록 분석에 매달렸다. 윤씨는 붙잡힌 뒤, 그 때 아마도 전화를 건 게 아니라, 음악을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헛다리만 짚은 셈이다.

35일 간의 수사···진실은 알 수 없었다.

35일간의 수사 끝에 피의자를 잡았다. 윤씨는 범행 동기를 "그들이 나와 달리 너무 행복해보여서…"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대로 받아썼다.

정말 그랬는지, 그들의 행복에서 왜 살의를 느꼈는지, 경찰은 더 묻지 않았다. 나도 물을 수 없었다. 그게 윤씨의 변명인지, 윤씨에게 주어진 이 사회에서의 3개월이 남긴 진실인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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