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월드컵이 한창이던 그 때 파리 시내를 이틀 동안 돌아다녔다.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세느강 유람. 서울도 그렇지만 그런 명소들은 왠지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이었다.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은 다들 그렇다.
다만 오래된 철길이나 고택들이 늘어서 있는 곳에는 뭔가 자유분방함이 깃들어 있었다. 끄적거린 낙서 그림들 사이에 남다른 예술혼이 서려 있었다. 낮 동안과 달리 저녁 불빛을 내려 받고 있는 세느강도 영국의 타워브릿지 아래의 물빛처럼 이색적인 정열로 가득차 있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코엑스. 뭔가 깔끔하고 호화로움이 집중된 곳이다. 세계 최 정상들이 모여들기에 부족함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남대문 시장이나 북촌 마을처럼 잊혀져가는 서울의 옛 자취를 품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진동선의 '올드 파리를 걷다'(북스코프)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앗제(Eugene Atget)의 시선을 따라 파리의 옛 자취를 담은 사진 에세이집이다. 물론 사진만 난무한 무미건조한 글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가져오게 하는 인문학적 에세이다. 시간과 장소를 옮겨가면서 쓴 기행문이긴 하지만 적절한 소설 형식도 갖추고 있다. 오래된 파리로부터 사라져가는 서울의 옛것을 떠올리게 하는 길잡이 역할도 한다.
외젠 앗제는 우리에게 '기록 사진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필림에 담은 그의 연작들은 파리에 있는 서민들의 집, 거리, 외딴 마을의 구석, 카페, 사창가, 도로변의 진열장들, 그리고 어두컴컴한 간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고요한 자취 속에 생명과 고뇌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시에서 대할 수 있는 여운을 그의 사진집 속에서 흔쾌히 맛볼 수 있다.
그것이 진동선을 파리로 부른 이유였다. 그는 앗제가 간 길을 따라 파리의 옛 흔적을 되밟았다. 물론 올드 파리는 비단 앗제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앗제로부터 보들레르, 마네, 브랏싸이, 그리고 아폴리네르의 발자취 곳곳을 좇아 다녔다. 그들로부터 얻게 된 단 하나의 영감이 있다면 그것이다. 파리는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바뀌는 도시였다는 것.
파리의 에펠탑, 그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에 의해 세워진 명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건축가 에펠만을 기억할 뿐이란다. 바로 그 시점에 사진작가 앗제가 등장했단다. 나폴레옹 3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으며 16차선 직선 도로를 닦고, 건물을 마구잡이로 쌓아 올리던 오스만 남작이 활동하던 바로 그 때에 말이다. 올드 파리가 붕괴되는 그 시점에 앗제가 나타나 사라져가는 파리의 자취를 붙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과 떠오르는 것들. 뒤로 물러는 것들과 새로 솟아나는 것들. 그건 올드 파리와 뉴 파리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서울과 우리나라 곳곳도 똑같은 현상이다. 고가 다리가 부숴지고 인공 개천이 뜨는 것도, 옛 집들을 허물고 뉴타운을 조성하는 것도, 맑고 깨끗한 S라인 강을 다듬으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올드 서울, 올드 대한민국이 그토록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진동선을 비롯한 한국의 사진가 11명이 앗제의 시선을 따라 사라지기 직전의 올드 서울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것. 청계천 고가가 없어질 무렵, 서울의 거의 모든 지역이 재 개발권에 놓이던 그 그 무렵, 그들은 올드 파리처럼 올드 서울을 붙잡고자 했던 것이다.
"파리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천천히, 상념에 잠겨 바라보는 파리는 더욱더 아름답다. 올드 파리는 자국을 보고 자국을 남기는 길이다. 그렇게 눈과 마음으로 새기고 보듬는 길이 올드 파리의 길이다. 길은 늘 시간 속에 있다. 언제나 어제, 오늘, 내일 속에 있다. 올드 파리를 걷는 길은 시간의 속살을 더듬는 길이다. 가장 아름답고 황홀하게 파리의 속살을 만지는 길이다."
아무쪼록 진동선의 사진집을 따라 올드 파리를 마음껏 휘젖고 다녔으면 좋겠다. 앗제가 좇아 다녔다던 파리의 어둠과 밤, 선술집과 가로등 길, 거리의 여자와 야바위꾼, 넝마주이와 꽃파는 소녀, 그리고 신문팔이 소년을 우리도 올드 파리를 따라가 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올드 서울도 붙잡아 보도록 하자.
권성권 SBS U포터
http://ublog.sbs.co.kr/littlechri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송고됐습니다.)
[U포터] 올드 파리에서 서울을 붙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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