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방송 뉴스에서 인터뷰가 나가면 인터뷰한 사람의 이름 외에도 직업이나 소속기관을 표시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 "김수현/SBS 문화부 기자"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던 양혜규 씨를 인터뷰하고 나서 기사를 쓰려 하니 이 '직함'을 뭐라고 써야 할지 난감해졌다. 소속된 기관이 없는 예술가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신경숙/소설가' 이런 식으로 써왔는데, 양혜규 씨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한 마디로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이다.
언뜻 떠오르는 말은 '화가'라는 말이지만, 양혜규 씨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화가-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분류되는 이들이 하는 작업과는 다르다.
사진, 비디오, 조각 등등으로 굉장히 다양한 그의 작업을 보면 (심지어 이번에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작품의 1인극 연출까지 맡았다) '화가'나 '조각가'나 '사진작가' 같은 어느 한 장르에 국한시켜 얘기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다른 매체에서는 뭐라고 썼나 봤더니 '작가'라는 말이 많다. 실제로 미술계에서도 그냥 '작가'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긴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작가'라면 '문학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혼란스럽다.
결국은 '설치 미술가'라는 호칭이 꽤 많이 쓰이고 있어서 이렇게 쓰고 말았는데, '설치 미술가'라는 호칭 자체도 그리 명확한 개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미술계의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영어로는 그냥 '아티스트'라고 하면 끝날 것인데, 우리 나라 말로는 호칭이 아직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한다.
'화가' 대신 조금 더 높임말처럼 느껴지는 '화백'이라는 말은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고, 지금은 생소하지만, 예전에는 '조각가' 대신 '각백'이라는 말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얼마 전 장한나를 인터뷰했을 때에도 잠깐 인터뷰이 자막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했었다.
이번에 취재한 것은 장한나가 '지휘'하는 공연이라 첼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장한나를 '지휘자'라고만 쓰는 것은 지금까지 장한나를 '첼리스트'로 알아왔던 많은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은 절충하여 '지휘자. 첼리스트'를 병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예술가의 '직함'을 표기하는 것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어느새 '예술'을 '분과별' '장르별'로 나누려는 사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가는 그림만 그리고, 조각가는 조각만 하고, 가수는 노래만 하고, 작곡가는 작곡만 하고......
하지만 현대 예술은 장르의 벽을 허물고 서로 넘나들며, 여러 장르의 작업을 겸하는 예술가들도 많아지고,(사실 이런 예술가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기존의 장르로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장르를 구분해 불렀던 예전의 호칭에 집착하는 것은 이런 시대의 조류에 조금은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앞서 나는 '소소한 것들'에 신경이 쓰인다고 했지만, 실은 이 '소소한 것들'이 나에게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다음주에 열린다는 '가상 공간예술의 선구자' 마르코스 노박의 개인전 자료를 보다 보니 마르코스 노박은 건축가이며 미술가이며 음악가이며 이론가라는 말이 나온다. 이 사람을 인터뷰하게 된다면 직함은 뭐라고 써야 할까.
아. '다행히도' 마르코스 노박은 'UC 산타 바바라'의 교수이니 이 직함을 쓰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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