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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 씨 '루저' 논란에 대해

인터넷 언론의 가벼움, 또는 무책임

지난주 수요일 밤 SBS나이트라인 시간에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보도국 내부 게시판에 인터넷에서 논란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올랐습니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해서 출연자를 '루저'라고 불렀다는 얘기였지요. '대형 사고 쳤구나', 우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대 나왔다고 루저라고?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함부로 승자, 패자를 규정할 권리를 줬담. 좀 조심하지... 등등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부 게시판에 올라있던 <미디어 오늘>의 기사를 좀 볼까요? <지방대 출신은 '루저'? SBS뉴스 논란>이라는 큰 제목에 <광고기획자 이제석씨 뉴스 출연해 '봉변'>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첫 줄은 "SBS가 지방대 출신 젊은이를 '루저(패배자)'라고 지칭해 논란이 일고 있으며 시청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사는 "이른바 루저에서 광고천재로 인생역전을 했다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씨는 당황한 듯 했지만...라고 받아넘겼다"고 적었습니다. '봉변'을 당한 이 씨의 표정이 상상되지 않습니까? 기사는 이어 엄청난 성공을 일궈낸 이씨를 SBS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루저라고 폄훼했다'고 규정한 뒤 <다음 아고라>와 트위터 등에 오른 '시청자들의 황당하다는 반응'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기사가 금요일인 13일 새벽 1시가 넘어 인터넷판에 오른 걸 보면 아마도 <미디어 오늘> 기자는 인터넷에 나도는 반응들을 보고 기사를 쓴 듯 합니다. 물론 다시보기로 나이트라인 프로그램도 보았겠지요.

금요일 아침에 보도국이 시끌시끌 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대형사고를 쳤냐는 따가운 지적이 일자 나이트라인 팀을 맡고 있는 데스크가 해명을 했습니다. 경위야 어떻든 민감한 표현을 사용하는 바람에 물의를 빚은 것은 잘못됐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 알지만 '루저'라는 얘기는 '인용'을 한 것이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제석 씨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던 일이고 이 씨 본인이 직접 책 등에서 자신을 '루저였다'고 쓴 적이 있다, 또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면서도 '루저였다'는 이 씨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적이 있었다...

해명이 맞다면 <미디어 오늘> 기사는 매우 악의적인 왜곡이 되는 겁니다. 설마... 그래서 저도 다시보기로 방송 내용을 봤습니다. 실제 방송 내용을 옮겨봅니다. 괄호 안은 출연자인 이제석 씨의 말입니다.

☞ [뉴스속으로] 세계적 '광고 천재'의 인생역전!  - 동영상 보러가기

"지난 3년간 50여 개의 국제 광고계를 휩쓴 20대 젊은이가 있습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취업도 못했던 그가 세계 광고계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요. 오늘은 광고계의 편견을 부순 광고기획자 이제석 씨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제석 : 안녕하십니까.]

"이제석 씨를 두고 이른바 '루저'에서 '광고 천재'로 인생역전을 했다고 하던데 (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제석 : (웃으며) 루저라는 표현이 좀 격하긴 한데, 뭐 여러가지 게임에서 좀 승률이 좀 안 좋았기 때문에 루저였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곧바로 미국 유학 얘기로 옮겨갑니다. 다시보기로 보시면 알겠지만 이제석 씨가 어색해 하거나 봉변을 당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루저'였다고 불렀는데 방송에서 그 표현을 인용해서 질문을 했다고 봉변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죠. 방송 자체는 별 탈 없이 부드럽게 진행됩니다.

문제는 트위터, 자유게시판 등을 통해 유포되는 "SBS뉴스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제석 씨를 루저라고 불러서 이 씨가 봉변을 당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일단 SBS뉴스가 그런 짓을 했다고 규정된 이상 상상을 초월하는 욕을 얻어먹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미디어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 오늘>이라는 언론사가 기사로 그러한 주장을 확인해준 이상 네티즌들로서는 더 이상의 확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않고 '안심하고' SBS와 나이트라인에 대한 비판에 동참해도 되는 거지요.

저는 하도 답답해서 트위터에 전후 사정을 설명한, 요약하자면 지방대 출신이라고 이 씨를 루저라고 부른 게 아니라 이 씨 자신이 그런 표현을 썼고 그런 것을 인용해서 질문을 한 것이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몇몇 분들이 제 글을 리트윗했고 상당히 많은 분들이 제게 상황을 이해했다는 멘션을 주셨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꼭 그런 표현을 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혹은 제목 뽑기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을 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공감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트위터 등에서의 논란을 기사로 썼던, 그것도 상당 부분 왜곡된 시각으로 기사를 썼던 <미디어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 기사는 '이제석 씨가 봉변을 당했다'는 내용 그대로 올라 있습니다. 이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베낀 다른 인터넷 매체들의 기사도 그대로 올라 있습니다. 이들 매체에 누군가 '사실 관계가 그렇지는 않더라'거나, 혹은 '엄밀히 말하면 기사가 잘못된 것이니 고쳐 달라'는 요구를 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방송 내용을 객관적 시각으로 봤더라면 나갈 수 없는 내용이 지금도 버젓이 실려 있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의 멘션대로 트위터는 가벼운 것이라 누군가 어떤 평가를 하면 그에 대해 분명한 반박이나 해명이 없는 한 그대로 유통될 뿐만 아니라 급속하게 살까지 덧붙여지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토론방 (다음 아고라를 포함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 올라 있는 글들에 대해 일일이 사실 확인을 하고 댓글을 달지는 않습니다. 누구 누구가 무슨 나쁜 짓을 했대... 하면 곧바로 "아니 세상에 그런 나쁜 놈이..."라는 글이 바로 붙습니다. 거론된 사람 스스로, 혹은 잘 아는 사람이 그런 비판 글들을 찾아내서 반박을 하고 해명을 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정작 처음 글을 쓴 사람이 해명을 듣고 납득을 했더라도 이미 퍼져버린 다른 글들을 일일이 찾아내 대응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스스로 '언론'을 표방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들입니다. <미디어 오늘>은 더 그렇습니다. 왜냐. 미디어 비평을 하는 전문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존 매체들이 이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면 매섭게 따지고 혼내야 할 매체가 <미디어 오늘>입니다.

매체 비평을 하려면 적어도 비평의 대상인 매체들보다는 나은 원칙을 실천하거나 적어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맥락과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거두절미하거나 무시하고 그냥 기사 되는 쪽으로 몰아가는 글을 쓰는 것, 그건 어떤 언론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는 걸 그런 '기사 쓰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써서도 안 되는 겁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말들은 참 가볍습니다. 진지한 주장보다는 말단의 감각을 자극하는 글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가볍다고 무책임하기까지 해서는 곤란하지요. 비판적 시각, 비평적 시각은 사실관계에 대한 엄정한 취재가 바탕이 되어야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런 바탕이 없는 비판은 비난이기 쉽고, 그런 것으로는 비평의 대상, 비판의 대상인 기존 언론에서 아무 것도 개선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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