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2년의 하원의원직을 연속 20차례 당선해 연방 하원의원 생활만 40년, 한국 전쟁 참전 용사, 하원중 가장 입김이 센 세입위원장. 나열만 해도 포스가 느껴지는 이 백전 노장은 미국 민주당 뉴욕 출신 하원의원 찰스 랭글 의원입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인연으로 미 의회내 대표적인 친한파이기도 합니다. 보좌관으로 한인 2세 김한나양을 고용할 정도입니다. 김한나양을 대하는 찰스 랭글 의원의 모습은 친손녀를 대하는 듯 친근감이 넘치더군요.한국전쟁 60주년 기념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해 저도 몇차례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찰스 랭글 의원이 얼마전에 아주 치욕스러운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바로 윤리 강령 위반 혐의로 미 하원 윤리위에서 청문회를 연 것이죠. 랭글 의원이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 날 하루 미국의 모든 뉴스 전문 채널이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룰 정도로 찰스 랭글 의원은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느낌을 맛봐야 했습니다.
기업으로부터 부적절한 여행 경비를 받았다, 아파트 임대수입을 비롯한 몇 건의 자산 보고 누락 등 랭글 의원이 윤리규정을 위반한 혐의만 13개나 됩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여당 민주당에서는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집권당이 되면서 의회 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주창했는데 정작 소속 의원이, 그 것도 아주 지명도 높은 의원이 윤리 규정 위반혐의로 청문회까지 받았으니 당 이미지에 타격이 아닐 수 없죠. 그러다 보니 당내에서는 대놓고 말은 못해도 알아서 랭글 의원이 의원직을 그만둬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청문회가 열리고 보름 정도 지난 어제 (10일) 랭글 의원이 이례적으로 하원 본회의 시간에 발언을 신청해 37분동안 열변을 토했습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피를 토하는 연설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나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다. 나를 더 이상 흔들지 말라"였습니다.
"나는 어디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바로 여기 의회에 있습니다. 나를 11월 중간선거때까지 계속 바람속에서 흔들리게 하지 마세요. 나는 올해 80살입니다. 내가 깨끗하다는 결론이 나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명예를 되찾지 못한다면 그 때 나를 제명해도 좋습니다. 부패요? 내가 부패행위를 했다는 어떤 증거도 시사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부주의해서 제 때 자산 신고를 못한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 건 사과하겠습니다."
격정적인 노정객의 연설동안 그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흑인의원 모임 소속의원들과 일부 민주당의원들, 그리고 몇명의 공화당 의원들은 박수로 호응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었겠죠. 그리고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의사당을 지킨 노정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랭글 의원이 버티는 이유중 하나는 현실적으로 제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하원 의원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어제 랭글 의원의 연설도중 박수를 친 의원들은 제명에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랭글 의원이 걱정하는 것은 미 하원 윤리위원회가 자신의 윤리규정 위반혐의에 대한 결론을 다음달 13일에 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인 다음달 14일은 바로 11월 중간선거에 출전하는 뉴욕 연방하원의원 후보를 선정하는 민주당의 예비경선이 예정돼 있습니다. 제명은 안되더라도 부패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바로 다음날 경선을 했을 경우 여러모로 본인이 출전권을 따내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에게도 사전 고지 없이 발언권을 신청해서 의원들의,언론의 뇌리에 남는 격정적인 연설을 한 것입니다.
랭글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정치권을 취재했을 때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국회의원 중에도 이런 저런 혐의로 윤리위에 제소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윤리(특)위가 제대로 의원들을 징계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의원이 윤리 규정을 위반한 것 같다는 소식이 들리면 반대당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당장이라도 제명시킬 듯이 달려들지만, 곧 언론의 관심이 시들고 국민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갈 때쯤이면 유야무야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니 여야 모두가 한통속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제대로 항의 한마디 못하는 게 사실이었고요.
랭글 의원 역시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버티는 듯한 인상도 있습니다. 다만 미 의회 윤리위는 청문회라는 공개 회의 절차를 통해 랭글 의원의 비리 혐의에 대해서 조목조목 증언을 듣고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그 것만으로도 랭글 의원은 크나큰 타격을 받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청문회라는 게 의원들이 공직후보자를 검증하거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 사건을 재조사할 때만 열리지 않고 바로 의원들 스스로의 부정함과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열릴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굴욕과 창피함은 당사자에게 수치를 안겨줄 것입니다. 정치인에게 수치란 죽음과도 같은 말일 수 있습니다.
*하긴 수치를 모르는 의원들도 제법 있으니 이 것 조차도 약효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글을 마무리하니까 드네요. 그래도...
찰스랭글 "나를 바람속에서 흔들리게 하지 마라"
징계에 직면한 의원의 반발…그리고 동료의원들의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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