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대 사태: 상식 VS 법리.. 법리 VS 법리
오는 8월 9일 상지대학교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지금까지의 임시이사 체제가 막을 내리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정식이사를 선임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종전재단 추천 이사 5명, 교육과학부 추천 이사 2명, 그리고 상지대학교 구성원 추천 이사 2명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이미 지난 30일 이 같은 비율로 정식 이사회 구성을 마치려고 했지만 연기됐습니다.
종전재단 측, 즉 전임 이사장 김문기씨 측이 교과부에 추천 이사 명단을 정확히 5명만 제출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배수 혹은 3배수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5명만 제출한 것은 교과부의 선택권을 제한한 셈이 돼 교과부가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김문기씨 측이 제출한 명단에는 김문기씨 본인은 물론 김씨의 아들도 포함됐다고 몇 몇 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오는 9일 이런 비율로 이사진이 결정되면 김문기씨가 이사장직에 복귀하는 것은 확정적입니다.
17년 전, 사건데스크가 취재했던 '비리 이사장'
상식과는 멀리 떨어진 결론입니다.
상지대학교 전임 이사장 김문기씨는 비리 혐의로 교육부의 감사를 받아 이사장직에서 해임된 인물입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김씨를 수사해 기소했고, 결국 부정입학에 관여한 혐의가 인정돼 유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당시 언론보도도 요란했습니다.
"사학비리 백화점"이 김문기씨의 별명이었죠..
17년 전 기자 초년병이었던 저희 사건데스크도 혜화동에 있는 김문기씨 집에 취재하러 갔던 기억을 떠올리더군요.
이런 김문기씨가 17년 만에 다시 복귀하는 것, 건전한 상식과는 아무리 봐도 잘 맞지 않습니다.
김문기 씨가 부활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07년 대법원 판결입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학내 분규 등을 이유로 선임된) 임시이사는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며, 당시 정이사 구성(명단에는 박원순, 최장집씨 등 이른바 '유명 진보 지식인'이 대거 포함돼 있었습니다)에 대한 상지대 임시이사회의 결의를 무효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법원 판결문의 정신에 근거해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종전재단측 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이사회 구성 비율을 결정했습니다.
결국 2007년 대법원 판결이 김문기씨의 복귀를 결정한 것이죠.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공식화한 '법리'가 '상식'을 뒤엎은 셈입니다.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법조기자가 아니라 대법원 판결문을 접한 적이 없었던 제게는 다수의견보다도 소수 의견이 더 길게 서술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소수의견에 대한 재반박과 이에 대한 다른 대법관의 또 한번의 논박도 실명으로 기술돼 있더군요.
공식화된 '법리'는 하나지만, 판결문 안에 이미 '법'과 '법'사이에 피튀기는 논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그 논전을 따라가면서 '상식'과 배치되는 '법리'가 생산되기 까지, '법'과 '법' 사이에는 어떤 전쟁이 펼쳐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법리 전쟁' : 사학은 설립자의 것? 공공의 것?
논쟁의 핵심은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이사제도', 그리고 '종전이사'의 성격에 대한 입장 차이입니다.
요약하자면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먼저 사립학교에 대해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와 운영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최초 선임된 이사들이 후임 이사를 뽑는 식으로 이사회를 순차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영속성 있게 실현"하는 이사제도의 본질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은 임시 이사가 선임되기 직전까지의 종전재단 이사들이 "학교 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임무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자"로서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할 위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수의견은 이사제도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달리 합니다.
즉, 설립자가 선임한 뒤 그 이후의 이사회 결의를 통해 순차적으로 이사진 구성을 이어나가는 것이 학교의 설립 목적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설립자는 정관에 의해 설립목적을 구현하는 것이지 다른 방법으로 학교 운영에 개입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죠.
("설립자는 학교법인에 대한 관계에 있어 그 설립 목적을 담은 정관에 의하여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등을 실현하는 것이지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학교 법인 및 이를 운영하는 주체인 이사의 업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고..")
소수의견은 만약 종전이사가 학교 법인의 설립목적이 영속성있게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영속성의 최초 시발자인 설립자 및 그 지위 승계자는 정당한 이사회 결의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무효 확인을 구할 수 있게 되는 상황까지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결국 두 의견은 '사학재단'과 '교육'에 대한 근본적 철학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다수 의견의 철학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사학재단은 기본적으로 설립자와 그 의지를 계승하는 이사들의 것'이라는 생각이죠.
임시이사가 정이사까지 구성해버리면 결국 '국가'가 사학재단을 접수하는 꼴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잊을 수 없는 기본권 및 재산권 침해라는 것이죠.
반면 소수 의견은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합니다.
사학법인을 단순히 법인의 자율성 및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보호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설립목적에 중대하게 어긋나는 일(예컨대 비리)이 발생하면 국가가 개입할 수 있고, 그 수단으로 임시이사가 정이사 선임해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두 의견 모두 약점이 있습니다.
다수 의견을 논리적으로 확장하면, 그렇다면 설립자와 그 의지를 계승한 이사들은 법인을 강제 해산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재단의 운영권을 뺏기지 않는 셈이 됩니다.
잠시 임시 이사에 권한을 넘겨줬다 돌려 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사실 이 상황이 정확히 상지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요.
더 나아가 소수의견이 지적했듯이 '사학법인의 자율성 및 정체성'을 자연인으로서 설립자로부터 연유한다고 정의하면, 설립자는 이사회의 정당한 결정을 포함해 어떤 결정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 사학 법인 운영은 설립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는 셈이죠.
반면 소수 의견에 따르면 다수의견을 가진 대법관들의 우려대로 사학재단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접수해버리는 '공권력 남용'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법리가 팽팽히 맞설 경우, 결국 우리 사회의 현실을 둘러봐야 할 듯 합니다.
다수의견대로사학재단을 '국가'가 강제로 빼앗는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면 과연 이사장과 설립자의 재단재정에 대한 기여도(재단 전입금 비율)을 따져봐야 합니다.
불행히도 그 기여도가 현저히 낮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반면 사학법인이 공공의 통제를 받아야 할만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서울 강남의 S고등학교부터, 세종대, 덕성여대 등등 이사장 측의 여러 문제로 학내 분규가 발생한 학교 명단은 망라하기 어려울 정돕니다.
현실은 다수의견이 주장하는'사학의 자율성' 보다는 '공공의 통제'를 더 필요로 합니다.
'비리 이사장'이 상지대의 정체성?
지금 이 시점에서 '확정된' 법리는 '상식'과는 배치됩니다.
비리 이사장의 17년만의 컴백, 누가 봐도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부정 입학에 관여한 김문기 이사장이 상지대의 '정체성'을 대변할 위치에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지금 상지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리고 과거 상지대를 다녔던 모든 구성원에 대한 모독입니다.
'법리'가 비틀어졌다면 '정치'와 '행정'이 결론을 상식에 부합하도록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오는 9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부디 상식에 맞는 해법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상지대 사태 : 상식 vs 법리, 법리 vs 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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