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중등록, 법은 금지하고 있으나
기자들은 취재결과를 뒷받침할 관련 법규를 뒤질 때, 왠지 잘 본 것 같은 시험성적표를 기다리는 심정이 됩니다. 취재라는 노동으로 발견한 부조리. 그것이 부조리라고 기사로 쓸 수 있도록 든든한 근거가 돼 주니까요.
"이것 보세요. 글쎄 우리 사회가 합의한 법 테두리를 마구 파괴하고 있어요." 당당하게 고함지르고 싶어지거든요. 부조리를 금지한 법규를 찾았을 때, '아 우리사회가 이정도 품격을 갖췄구나'하고 누구보다 먼저 안도하는 기쁨도 덤으로 챙길수 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도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42조는 다행히도(?) 이 같은 이중 지원 자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학 당국자들이 심의를 거쳐 입학을 취소하도록 돼 있죠.
그런데도 해마다 천여 명의 무법자가 판치는 입시 현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입학취소 절차가 졸속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시나요?
2008년과 지난해 2,700명 가운데 고작 70명, 그 전 3년간 6천 2백여명 가운데선 2백명 남짓한 학생만이 고등교육법의 취지대로 입학이 취소됐습니다. 나머지 무법자들은 멀쩡하게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무사히 졸업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분노의 감정이 생길 줄로 압니다.
그래도 해명은 들어봐야 하겠죠. 이런 무법자를 가려내라고 있는데, 대입전형위반자 심사위원회입니다. 이중 입학 여부를 심사하고 구제나 입학취소를 결정하는데, 위원회 구성은 이렇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위원으로는 같은 협의회 입학전형지원실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실부장, 전국입학처장협의회장, 전문대학교무입학처장협의회 회장, 교육과학기술부 팀장 2명, 고교 교사, 변호사 등입니다.
복잡하시다고요? 교육부 팀장, 교사, 변호사를 빼면 모두 대학 교직원이거나 교수, 앞으로 대학으로 돌아갈 인사들입니다. 대학의 이해관계가 심의 과정에 빠지기 힘든 구조인 셈입니다. 지난해만 보면 이중 불법등록학생 수가 1,524명이었습니다. 모두 입학취소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 입장에서 보면 4,5년간 등록금 낼 학생이 그만큼 사라지는 '재앙'이겠죠. 3%에 불과한 학생만 입학이 취소됐던 데엔 이런 이해관계가 작용했다고 봐야합니다.
위법을 하고도 97%는 구제받는 현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듭니다. 구제가 남발되는 건 아닐까요. 전직 심의위원장은 학생의 입장에서 구제대상을 선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위원회는 각 대학을 통해 해당 학생들의 '소명서'를 제출받았습니다. 소명서는 '학생 입장'에서 쓴 불법 이중등록 사유가 써있습니다. 학생 본인은 이중등록 사실을 몰랐다거나, 부모나 교사가 학생의 진학을 위해 학생 몰래 이중등록을 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위원장은 밝혔습니다. 소명서를 받은 심의위원회는 이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들어줬습니다.
"아, 학생은 잘못이 없으니 학부모 교사는 처벌할 수 없지 않냐. 학생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받아들인다는 거죠. 이런 탓에 "제가 그런 게 아니라 부모(선생님)이 그랬어요."라는 소명서를 쓴 학생은 전원 구제됐습니다. 이런 걸 심의라고 부르는 데 동의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애초부터 취소 의지가 없었다는 비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의원실에 발주하기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이 대교협으로부터 불법 이중등록 현황을 받아 공개했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두 달이 넘는 시간동안 의원실 분들이 크게 애쓰셨죠. 하지만 그 뒤엔 사실 선배 기자인 김정윤 기자가 있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이 같은 사실을 미리 취재해 여러 통로로 문건을 확보하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직접 의원실에 '발주'를 한 것이죠. 그리고 문건까지 모두 입수한 뒤, 제게 문건이 건네졌습니다. 입시의 원칙을 흔드는 중대한 위법이란 문제의식과 취재를 위한 오랜 노력의 과정. 김정윤 선배가 몸소 보여준 소중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선배의 열정이 이끌어낸 문건을 읽고 해명을 들었을 뿐입니다. 김선배 덕분에 좋은 기사를 쓰고, <이달의 방송기자상>까지 함께 받게 되고, 이렇게 취재후기를 남깁니다. 올해 여름은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부조리를 밝혀 사회를 감시한다.' 원론에 나올법한 명제를 실천하는 기자는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더 좋은 기사를 하나라도 더 찾아서 쓰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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