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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서기석, 한국어식 한문표기 아니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장 "훈석식 표기 없었을 가능성도"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쓴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이후에 충성의 도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기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우면 충성의 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도 크게 맹세했었다. 곧 시경(詩經), 상서(尙書), 예기(禮記), 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익히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 하였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유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 중인 신라시대의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보물1411호)'에 적힌 글의 해석이다.

임신서기석은 당시 한국어식 한문표기인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쓰였다는 유일한 증거로 알려져 왔다.

훈석식 표기란 한국어의 어순을 그대로 한문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서술어(동사)-목적어 또는 서술어-부사어 순서인 중국식 표기와 달리 한국어 어순대로 목적어-서술어 또는 부사어-서술어의 순서로 쓴 표기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임신서기석에 나오는 '천전서(天前誓)'는 '하늘 앞에 맹세한다'는 뜻으로 주로 해석되는데, 원래 중국어의 어순대로라면 '맹세한다'는 뜻의 서(誓)가 맨 앞으로 가서 '서천전(誓天前)'이 돼야 원래의 한문표기에 맞다는 것이다.

임신서기석은 향찰 표기와 한문 표기 외에 훈석식 표기가 신라시대에 쓰였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런데 이 임신서기석에 쓰인 글이 훈석식이 아니며 훈석식 표기의 실재 가능성도 회의적이라는 내용의 글이 최근 한 학술지에 실렸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학회지인 월간 '한글+漢字문화'의 6월호(통권131호)에 실린 글 '임신서기석 비문 재해석'을 통해 이 비석에 쓰인 글은 중국어 어순에 맞는 일반적인 한문 표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임신서기석 비문이 훈석식 표기로 읽힌 것은 "원래 비문에는 없는 구두점을 후세에 잘못 찍으면서 그 구두점에 맞게 해석이 굳어졌기 때문"이라며 "구두점을 바르게 찍으면 일반적인 한문표기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비문의 각 문장에서 서술어 서(誓)의 앞에 일반적인 대명사 '우리 두 사람(吾二人)'이 생략된 것이라는 점을 고문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몰랐던 탓에 구두점이 잘못 찍혔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동안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二人幷誓記. 天前誓)'로 해석했던 부분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늘 앞에 맹세해 기록한다(二人幷誓記天前)'로 끊어 읽어야 하며 '서(誓)'는 다음 문장의 서술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볼 때 비문의 내용은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하늘 앞에서 맹세하여 쓴다. (우리 두 사람은) 지금 스스로 3년 이후에 충성의 도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일에 허물이 있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게 될 것임을 맹세한다. 만약 (3년 이내라도)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우면 맹세한 것을 받아들여 행할 수 있음을 맹세한다. 또한 별도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는 시경, 상서, 예기의 경전과 윤상(倫常. 인륜의 상도)을 3년 동안 익힌다는 맹세를 크게 서약했었다"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는 "비문의 작자들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글을 새기기 1년 전부터 시경과 상서, 예기 등을 공부해왔다면 한문 어법을 몰라 훈석식 표기를 썼을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이어 "임신서기석을 이렇게 재해석하면 '임신서기석은 훈석식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 자료'라는 기존 시각도 달라질 것"이라면서 훈석식 표기법이 있었다는 주장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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