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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가 내린다 "끄나풀을 색출하라!"

기자의 주 출입처인 '노동부'에는 지난 연말부터 벌집 쑤시듯이 연일 소란한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1월 1일 노조법 개정으로 인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도입 문제인데요,

특히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관련된 '타임오프'가 최근 뜨거운 감자입니다.

'타임오프'란  간단히 말해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월급받고 노조활동 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데요,

오는 7월부터는 원칙적으로 '타임오프'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 동안에는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금지되니, 노동계로서는 가능한 많은 '타임오프'를 받아내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반대로, 전임자 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 강성노동운동의 주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영계는 이 '타임오프'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게 목표였고요,

정부도 경영계와 정도는 다르지만, 전임자 수를 줄이는 것이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이라는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입장을 갖고 노·사·정은 지난 2월부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이하 근면위)라는 회의체에서 이 '타임오프' 총량과 한도를 결정하기 위한 열띤 협상을 벌였습니다.

노동부 출입 기자들도 각자 취재원과 정보소스를 동원해 협상 내용을 열심히 취재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SBS 출입기자인 저도 있었습니다.

근면위 협상 최종 시한인 지난 4월 30일 새벽 2시께, 저는 제 절친한 취재원인 [?]로부터 전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전날 회사 회식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터라, 그냥 메시지를 보지도 않고 계속 잠을 청했죠.

그리고 새벽 6시쯤 속을 다스리기 위해 찬물을 들이킨 뒤, 예의다 싶어서 [?]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 김기자. 받아 적으세요. 조합원 수가 99명 이하인 노조는 연간 천 시간, 조합원 299명까지는 2,000시간, 조합원 만명 이상 노조는 최대 2만 시간….]

그날 새벽, 근면위 공익위원들이 노사에 통보한 타임오프 최종 중재안 내용이었습니다.

수첩 찾을 겨를이 없어 식탁 위해 굴러다니던 명함 3장 여백에 빼곡히 받아적었습니다.

[? : 그럼 이만….]

[기자 : 감사합니다.]

평소 [?]의 신뢰도를 믿어 의심치 않는 기자는 바로 회사 데스크에게 보고 했습니다.

[선배, 기사 시간 잡아주세요.]

기사는 오전 10시 40분 뉴스부터 나갔습니다.  보도한 내용은 그날 새벽 2시에 근면위 공익위원들이 노사에 통보한 (물론 다음날 새벽, 근면위는 좀더 노조측의 요구를 수용한 진짜' 최종 수정안'을 내놓습니다) 중재안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SBS 뉴스로 단독보도됐습니다.

연합, 뉴시스 등 통신사와  KBS, YTN, MBN등 경쟁 방송사가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고 일제히 따라 보도했습니다. (다음날 근면위 통과 내용과 차이가 있어 특종으로 추천은 되지 않았지만, 출입처에서는 체면을 한 번 제대로 살렸습니다.)

이후 정오쯤 민주노총의 절친한 간부 한 명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민노총 간부 : 야 너 우리 ***님이 가만히 안 둔대.]

[기자 : 협박이야? 우리 사이에 왜 그래?]

[민노총 간부 :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정부가 준거야, 아님 노동계가 준거야?]

[기자 : 취재원 보호 때문에 말할 수 없어. 그리고 정부, 노동계만 있나? 경영계도 있잖아.]

[민노총 간부 : …. 알았어. 경영계구나?]

[기자 : 난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

[민노총 간부 : 그래. 너도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

전화통화 내용 전부였습니다. 전 나름대로 [?]의 신변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후 오후 3시, 서울 마포에 있는 산업인력공단 건물에서 근면위 최종협상이 시작됐습니다.

협상 시작부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대표가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제가 경영계와 정부, 한국노총측 참석자에게 들은 민주노총 모 인사의 발언은 이렇습니다.

[민주노총 모 인사 : 누가 정보를 누설했는지 증거가 있습니다. 경영계 대표가 가르쳐줬다고 SBS 기자에게 직접 들었습니다.증거가 있습니다.]

끄나풀부터 색출하자는 발언.  

민주주의 언론체제의 경쟁 취재 시스템에서 '조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납득하기 힘든 경고 발언이 나온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SBS 기자에게 직접 들었고 증거가 있다는 내용에서는 '폭소' 뿐만 아니라 그동안 민노총 취재원에게 가졌던 신뢰도에 금이 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끄나풀로 지목된 경영계 인사가 회의 쉬는 시간 내내 저를 찾아다니더군요.)

회의는 시작부터 기자의 보도 탓(?)에 파행됐고, 이후 근면위 참석자들은 저녁을 먹고 돌아온 뒤인 저녁 7시 넘어서부터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근면위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최종협상시한이 그날 자정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 느긋한 태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협상은 자정을 넘겨 진행됐고, 새벽 3시쯤 근면위 공익위원 주도로 타임오프 최종안이 결정됐습니다.

타임오프 최종안은 기자의 보도 내용보다 노동계 입장을 좀더 수용한 '전임자 최대 18명'으로 결정됐죠.

국내 최대 노조인 현대차 노조 전임자 규모를 10분의 1수준으로 줄이는 내용이니, 노동계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협상 시한인 자정을 넘긴 날치기였다며, 최종안의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노동부는 어차피 근면위 시한 규정이, 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훈시적 규정'에 불과한 만큼 협상 내용은 유효했다고 맞받아쳤고요, 노·사·정 갈등은 다시 고조됐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에 벌어진 또 한 번의 아름답지 못한 광경이었습니다.

자, 이쯤에서 기자의 생각을 조금 더해볼까요?

'날치기다?' - 충분히 일리 있는 이의 제기입니다. 아무리 훈시적 규정에 불과하다 해도, 지키지 않을 법을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 자체가 결정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조 분쇄를 위한 결정안이다?' - 이또한 노동계에서 충분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지난 80,9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자부하고 있는 노동계로서는 갑자기 10분의 1(노조 규모별로 다릅니다.)로 전임자 수를 줄이라고 하면, 이를 탄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협상에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임했다.'라는 주장까지 맞을까요?

자, 기자의 보도를 빌미로 '끄나풀 색출' 소동으로 회의가 지체된 시간이 대략 4시간쯤 됩니다.

그리고 근면위 최종시한을 넘긴 시간은 3시간 정도 되죠.

단순히 산술로 따지면, '끄나풀 색출' 소동만 아니었다면 자정 전에는 결정이 나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노동계가 마지막날 근면위 협상에 참석한 것 만으로도 제 보도 내용인 '전임자 수 최대 10명'에서 '전임자 수 최대 1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협상에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임했다면, 더 많은 전임자 수를 확보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로선, 이제 노동계 이슈 취재의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고마운 [?] 덕에 후회없는 단독 기사도 썼습니다.  그리고 사회부 시절부터 거리에서 같이 부대낀 모 민노총 간부와의 유대감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끄나풀 색출' 소동 같은 웃지 못할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건을 계기로 기자가  좀더 여유를 갖고 기사를 쓸 수 있는 취재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은 취재원이 우선 여유를 갖고 민주주의적 실리를 추구할 때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여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 다음에 기자에게 누가 취재원이 누구냐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할 경우, 저는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그 기사 그냥 신내림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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