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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매 맞는 국제신평사…협의과정도 논란

국제 신용평가사가 부실평가 시비로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평가 과정의 적절성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연례방한 협의에서 우리 당국의 협조는 국제 관행에 비해 '극진'하다는 게 중론이다. 국익에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에 대한 정보와 통찰력을 가진 최고위급 당국자가 만나 최선을 다해 응대를 해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핵심 정보가 유출되고 최고위급 당국자의 판단이나 시각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신용평가사들의 우리 경제에 대한 바른 이해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부를 탓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진력을 다했는데도 신용등급을 환란 전으로 되돌린 곳은 한 곳에 불과할 정도로 국가신용등급 성적표는 시원찮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신평사 신용..소송에 규제 움직임까지

금융시장에서 '저울' 역할을 하는 신평사들은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신뢰가 흔들리면서 저울의 눈금을 의심케 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서 부실평가 지적에, 남유럽 재정위기 때는 뒷북평가라는 비난에 각각 휩싸였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심판관 역할은커녕 혼란만 부추긴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부채담보부증권(CDO) 발행 때 신평사들은 신용등급을 '트리플 A'로 평가한 뒤 수수료를 받아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부실채권이 됐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는 한 원인을 제공하게 됐다.

신평사 직원들이 이메일이나 문자로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든가 "소가 만든 상품이더라도 우리는 등급을 매겨야 한다"고 한 사실이 미 하원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되면서 도덕성도 도마에 올랐다.

이런 문제의 근저에는 신평사들이 국채나 회사채의 등급을 매기는 대가로 평가 대상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이해상충의 구조적 한계가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평가대상과의 유착론이 제기되기까지 한다.

신평사들의 평가 잣대는 법정에 서게 됐고, 검찰 수사 대상으로도 올랐다.

미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은 신평사들이 터무니없는 신용등급을 매기는 바람에 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지난해 소송을 냈다. 최근에는 뉴욕 검찰이 8개 은행이 모기지 관련 거짓정보를 신평사에 줬는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기지 상품이 과대평가된 것으로 보고 흑막이 있는지 파헤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방한한 제프리 셰이퍼 씨티그룹 부회장은 "신평사들이 '트리플 A'라고 해도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리스 사태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독과점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는 3대 신평사가 미국계와 영국계인 만큼 유럽과 아시아를 홀대한다는 원성도 자자하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신평사들이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업무를 집행하는지 조사하고 독일과 프랑스는 신평사 규제에 나설 방침이다.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도 감독당국이 신평사의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하고 평가과정의 투명성과 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갑을'관계 고착화 문제..개선엔 '글쎄'

우리나라는 그리스보다 더 쓰라린 경험이 있다. 무디스는 1997년말 외환위기로 구제금융을 신청한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 달여 만에 6단계나 깎아내렸다. 최근 그리스에 대한 강등조치보다 훨씬 심한 처사였다.

이처럼 아픈 경험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태도에 변화를 몰고 왔다. 정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신평사들이 와도 사무관 정도가 협의에 응할 정도였지만 그 후 차관보급으로까지 협의 대상이 격상됐다"고 말했다.

신평사의 채점결과가 국익을 좌우하는 금융시장의 구조를 감안할 때 신평사는 철저히 '갑'이, 우리 당국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신평사의 연례 방한 협의는 기획재정부가 상대방의 요청을 감안해 일정을 짠다. 재정부 차관보가 주도하는 회의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설명하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을 방문한다.

기관장 면담도 이뤄진다. 올해 무디스가 연례 방한 협의에서 만난 우리측 당국자는 기획재정부 1차관,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다. 한국은행 총재 면담도 관례처럼 됐다. 한 때 북한 리스크를 이유로 통일부 장관을 만난 적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정보는 공개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원칙"이라며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거에는 공개했는데 요즘은 공표하지 않는 자료를 설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고위 당국자 면담은 일반적으로 '예방' 성격을 띠지만 신평사에 따라선 실무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그들이 한국을 잘 알기에 우리의 취약성이 드러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 줄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고 소개했다.

이 때문에 내비쳐서는 안 될 최고 당국자의 입장이나 시각이 노출돼 정보의 비대칭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격상된 협의채널의 문제에 대해선 공감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10년 넘게 고위 당국자들이 나서서 공을 들였는데도 아직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낮은 국가신용등급을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무디스만 지난달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상향했다. 고위급이 직접 만나는 것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상유지의 필요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많다. 국가신용등급을 매기는 곳이 시장에서 메이저 3사로 굳어진 구조적 현실 속에서 무게와 설득력을 갖춘 고위 당국자들의 설명이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 일 없이 넘어가면 보통이고 잘못되면 비난당할 수 있는 계륵 같은 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기관장 면담은 한국식 문화인데 다른 나라에선 그런 경우가 드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금융연구원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신평사들이 예측은 커녕 현재 상태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게 문제이며 평가의 공정성에도 의문이 든다"며 "우리가 이들을 극진히 대우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한국이 독자적으로 이들을 제재하거나 규제하는 게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독과점 구조인 신평사들의 횡포를 막으려면 국제사회 차원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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