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2일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국내의 핵 전문가들은 일단 수소폭탄 같은 무기체제로 이어질 수준은 아닌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천안함 사건이나 6자회담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압박성 기류에 맞서 또 다른 차원의 핵기술 개발 가능성을 경고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원 = 핵융합은 여러 가지인데 순수 핵융합도 있지만 수소폭탄과 관련있는 건 D/T핵융합이다. 이 경우 D는 중수소, T는 삼중수소를 말하며 핵무기 위력을 강화하는 데 쓰인다. 핵폭발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넣으면 고온고압 때문에 핵융합이 일어나는데 핵분열보다 에너지가 훨씬 많이 나와 위력이 크게 강화되는 것이다.
보통 원자폭탄을 만들면 수소폭탄으로 간다. 플류토늄 원폭을 만들어 정상적인 위력을 발휘하면 그 다음에 수소폭탄을 만드는 것은 원폭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
북한이 10년 전인가도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상온 핵융합은 원폭 폭발시의 고온고압을 이용하는 핵융합에 상대되는 개념인데 아직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곳이 없다. 성공했다고 주장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나중에 검증해보면 모두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 기술로 핵융합을 하려면 실제로 핵실험을 해야 하며, 실험실 재료로는 핵융합 온도를 견뎌낼 수 없다. 수소폭탄을 실험하려면 최소 메가톤급 핵폭발이 필요한데 주변 환경오염이 엄청나다. 북한이 1.2차 핵실험 때 부분적으로 핵융합을 실험했을지도 모르나 당시 위력을 고려하면 그렇게 보기는 애매하다.
북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D/T방식 핵융합을 연구해왔고 따라서 강화형 핵무기는 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핵융합 실험은 영변 말고, 평성 과학단지 같은 데서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성공의 기준이 뭐냐 하는 것인데 수소폭탄의 원천 기술이 될 수 있는 핵융합이라면 실험실에서 성공할 수 없다.
▲서울대 홍상희 교수(핵융합 전공) = 핵융합 연구를 북한에서 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핵융합 기술은 핵융합 반응에서 나온 에너지를 원자력 발전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핵융합 결과물로서 핵폭탄을 만들 수는 없으며 핵무기 제조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이 핵융합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세계 과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는데, 이런 보도가 나온 것을 보면 북한이 '열 핵융합 반응 장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실험을 한 번 해본 것 아닌가 싶다.
핵융합 실험의 최종적 목적은 핵융합 반응으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지난 3,40년간 핵융합 연구가 진행돼왔지만 아직 실용화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3,40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가지 기술적 난제가 남아 있고 실험 장치의 목적에 따라서 실험 결과가 달라진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려는 시위성으로 본다. 북한은 최근 북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조기 재개의 의지를 나름대로 내보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핵기술 개발 과정을 계속 진행시켜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융합 기술은 아주 초보적이거나 조잡한 수준일 것이기 때문에 이번 발표는 엄포용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또 천안함 사건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을 핵문제와 6자회담쪽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그같은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은 어느 정도 갖게 됐다. 따라서 핵융합 기술로 갈 수도 있음을 시사하면서 향후 대화에서 우위에 서려는 포석 같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남한이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려는 상황이어서 북한은 3차 핵실험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이 중국과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한 물증을 갖고 제재 수순을 밟아가면 북한이 초강수로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지 못할 경우 북한은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이번에 내보인 것 아닌가 싶다.
남한과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지체시키면서 계속 제재 국면으로 가면 핵무장력을 더 강화하겠다는 경고성 메시지인 것이다. 일단 북한이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얘기하면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