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야근하고 집에서 자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오는 토요일용으로 외국인 노동자 관련 기획 기사를 준비하라는 하명이었습니다.
'음...예, 알겠습니다.'
말을 알겠다고 했지만 이틀만으로 될까 스스로 반신반의했습니다. 주제가 잡힌 상황도 아니고 더욱이 섭외가 잘 될까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어쨌든 다음날인 목요일 아침부터 부랴 부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입금체불이나 가혹한 근무 여건 등 노동조건보다는 의료혜택 등 외국인 노동자의 생활 조건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감 잡았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료 혜택이 미흡하다는 주제로 리포트를 준비하기로 하고 관련 단체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가취재가 맞는지 확인하고 섭외를 부탁하기 위해섭니다.
방송 기자에게 섭외 성패는 리포트 자체의 성패로 직결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섭외가 마땅치 않거나 방송용 '그림'이 약하면 킬되기 일쑵니다.
제일 먼저 전화를 건 데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 순회 진료나 치료비 지원 같은 지원을 많이 하고 있는 이주민건강협회였습니다.
이애란 사무국장님과 통화를 하니 최근에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포천의 한 돼지농가에서 일하다 다친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데 산재처리를 못 받았다는 얘기었습니다.
'옳다구나...일이 잘 풀리네...'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화 통화가 잘 안 되는데다 낮 시간에는 근무 중이라 사실상 통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보통 섭외할 때는 며칠씩 기다리곤 하는데 일이 단번에 풀린 것입니다.
섭외도 잘 됐겠다. 내일 촬영하면 되니까 전체 기사 개요나 고민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날 저녁, 건강협회로부터 갑자기 섭외자가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못 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맙소사!!!'
당장 촬영하고 인터뷰할 시간이 내일밖에 없는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울, 인천, 용인 등 수도권내 외국인노동자센터와 이주민노동조합 등을 중심으로 다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전화를 안 받는다...어렵다... 심지어 매일 수백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찾아와 치료를 받는 국내 유일의 무료 외국인 전용 병원마저 오늘은 행사로 쉬는 날이랍니다.
'이럴수가!!!'
방송하려고만 하면 흔하던 일도 안 일어난다는 방송가의 징크스가 떠올랐습니다. 보통 금요일 오후 2시면 당일날과 주말용 뉴스 아이템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2시전에 아이템 가부를 보고해야 되는데 시간은 촉박하고 섭외가 된다 안 된다 확정적으로 보고도 못 하겠고...속이 탔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곳은 안산이주민센터.
외국인 노동자가 밀집촌이 형성된 안산에 있어 외국인 노동자 섭외할 때 자주 연락하는 곳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똑 떨어지는 사례는 아니지만 병원비 문제로 고생한 중국 동포분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야호~~~왜 진작 여기부터 전화 안 했지 괜한 고생했네...'
즉시 사례자 찾았다고 회사에 보고하고 사례자를 만나기 위해 안산으로 향했습니다.
중국동포 출신으로 07년도 한국에 들어온 문 갑 씨. 지난달에 탈장수술을 받았는데 130만원 넘는 수술비가 나와 걱정이 큰 상태였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근로자는 영세 사업장이나 건설노동자로 일하다보니 산재나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동포 근로자는 70% 정도가, 일반 외국인 노동자는 30% 정도가 10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해마다 산재율도 높아 지난해엔 5천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고, 이 중 백여명은 숨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업체에서 법적으로 의무임에도 경비를 줄이려고 외국인 노동자는 가입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용 문제로 병원가기가 부담스럽고 참다가 큰 병이 생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문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하고 촬영하고 무사히 촬영완료.
방송 예정일인 토요일... 원래 근무라 회사에서 내근하면서 기사쓰고 편집하고 방송 준비를 마쳤습니다. 제 아이템은 8뉴스 뒷부분에 잡혔더군요... 앞쪽이 아닌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8뉴스가 끝나도록 제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뉴스 시간이 넘쳐서 빠진 것입니다......
'이 허탈함이란...'
'애써 준비했는데 빠진 일이 이번만도 아니다'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더군요...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방송을 준비하는가!!!
살 떨리는 섭외 그리고... 비참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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