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백령도' 현장
백령도는 인천연안부두에서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립니다.(배의 종류에 따라)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섬 답게 거리도 멀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요.
때문에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가장 먼저 출항이 금지되는 섬이 바로 백령도입니다.
저도 재수 끝에 백령도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도전에 실패하고, 두번째 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라"는 캡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다음날이 함미 인양이니,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마찬가지 지시를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또 '풍랑주의보'라니요.
현장으로 가기 위한 언론사들의 경쟁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 언론사가 해경 배를 빌려 탔다는 말에 저희도 7명 겨우 탈수 있는 작은 해경 보트를 타고 따라 가다가 또 내렸다를 반복...
급기야 취재진들이 많아지자 오후에는 아예 배를 여객선을 띄워 현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 열악한 취재 환경
먼저 백령도 취재를 했던 동료들로부터 열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처음보다 나아졌다는 상황인데도 말이지요.
4월 중순임이 무색하게 섬 날씨는 무척 추웠습니다.
겨울에 입던 폴라티를 다시 꺼내 겹겹이 입고, 청바지 안쪽에 두툼한 내복까지...
등산복에 겨울용 내피까지 입었지만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를 당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비닐 천막도 바람에는 소용이 없었지요.
민간 봉사단체와 기업에서 마련한 컨테이너 박스에 따뜻한 물로 추위를 녹이고, 가까운 곳에 식당이 없어 아침과 점심은 라면과 초코파이로 대신했습니다.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저는 먹지 못하는 것이 추위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
간이 화장실 1개에서 겨우 볼일을 봐야하는 일도 곤욕이었습니다.
함수와 함미 인양작업이 벌어지는 용틀임 바위에는 방송 송출 차량과 중계차들이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100여 명 정도의 언론사 취재진들이 진을 쳤지요.
며칠 째 하루종일 추위와 따가운 햇볕에서 배고픔에 떨었지만,
어서 빨리 함미가 인양돼서 실종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겠지만, 기자는 '현장'에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 공포의 7시간 생방송
함미 인양작업은 오전 9시 유속이 느려지는 정조시간을 맞춰 시작돼, 3시간 만에 수면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각 방송사들의 뉴스특보 역시 8시 반쯤부 시작됐지요.
실시간으로 함미 인양상황을 전하기 위해섭니다.
오전 8시 44분. 실종장병 44명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기원제로 인양작업은 시작됐습니다.
작업시작 10분 만에 대형 크레인에 연결된 3가닥 쇠줄 아래에서 천안함 함미의 윗 부분이 완전이 드러났습니다. 혹시라도 시신이나 유류품이 유실될까봐 1분에 1미터의 느린 속도로 작업은 진행 됐지요.
크레인과 함미를 연결할 부교가 설치되고, 배수요원 45명이 배수펌프를 가지고 함미 내부에 진입했습니다.
504톤에 달하는 해수를 빼낸는 2시간의 과정이 끝난 뒤, 낮 12시쯤 육중한 선체는 바지선 위에 안착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생방송으로 전국으로 전해졌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는 앵커와 기자, 전문가가 백령도 현지 화면을 보면서 인양 전 과정을 설명을 하고,
현장에서는 갖가지 첨단 장비로 먼 거리에 있는 인양 작업을 최대한 가까이 보이도록 촬영합니다.
인양과정이 더 잘 보일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해안을 곳곳을 직접 발로 뛰어야 하죠.
저는 백령도 현장 중계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스튜디오 안에서 원하는 화면을 중계차 감독님께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계차 코디' 역할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요.
더 정확하고, 생생하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위한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이뤄지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 걱정이 슬픔으로...
특보 막바지에 이르면서 실종 장병들의 시신의 신원이 확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신이 발견됐다고 하더라도 검안절차를 거처야 신원이 확인됩니다.
3시 20분부터 본격적인 함미 내부 수색작업이 시작됐고, 3시 55분 서대호 하사의 시신이 승조원식당 입구에서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밤 11시가 돼서야 수색작업이 마무리 됐고, 36명의 실종 장변의 시신이 발견됐지요.
"우리는 지금 시신이라도 돌아와 슬퍼할 수 있는 가족들을 부러워하는 심정입니다." (가족대표의 말 가운데...)
어떤 모습이라도 돌아만 와달라 했던 가족들은 막상 싸늘하게 돌아온 아들이자 남편의 모습에 오열했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마음으로 함께 울었을 겁니다.
남기훈 상사 · 김태석 상사 · 서대호 하사 · 방일민 하사 · 이상준 하사
이상민 병장(88년생) · 안동엽 상병 · 임재엽 하사 · 신선준 중사 · 강현구 병장
서승원 하사 · 박정훈 상병 · 차균석 하사 · 박석원 중사 · 김종헌 중사
김선명 상병 · 김선호 상병 · 이용상 병장 · 민평기 중사 · 강준 중사
손수민 하사 · 조진영 하사 · 심영빈 하사 · 김경수 중사 · 이상희 병장
최정환 중사 · 조지훈 일병 · 문규석 상사 · 정종율 중사 · 이상민 병장(89년생)
이재민 병장 · 장철희 이병 · 안경환 중사 · 나현민 일병 · 문영욱 하사
정범구 상병 · 김동진 하사 · 조정규 하사 · 박보람 하사 · 박성균 하사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창기 원사 · 최한권 상사 · 박경수 중사 · 장진선 하사 · 강태민 일병 · 정태준 이병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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